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전경. /뉴스1
“아내가 신혼여행지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보험금 1억5000만원을 달라고 했어요. 보험금 지급 사유가 안 된다고 설명을 하자 언성을 높였어요.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물으면 답변을 회피하며 말을 빙빙 돌렸습니다. 석연치 않았어요.”

S보험사 직원 A씨는 지난 2018년 3월 보험사기를 목적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보험금을 노린 남편에 의해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한 여성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은 S보험사 특별조사팀(SIU)에서 일하는 경찰 출신 직원의 의심 덕분이었다.

지난 2017년 4월 당시 만 21세였던 남성 W씨는 여성 K씨(당시 만 19세)와 혼인신고를 마치고 일본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부부가 처음 만난 건 2015년 7월이었다. W씨는 부모님이 운영하던 식당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온 K씨와 교제를 시작했고, 2년 후 K씨가 성인이 되자 서둘러 결혼했다.

오사카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날 W씨는 공항에서 아내 앞으로 ‘여행자보험’ 상품에 가입했다. 사망 시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은 1억5000만원이었는데, W씨는 이 보험금의 수익자를 본인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일본에 입국한 다음 날 오사카의 한 숙소에서 아내 K씨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남편 W씨는 현지 일본 경찰에게 “아내가 우울증 때문에 자살했다”고 진술했고, 일본 경찰은 유족 동의 하에 K씨의 시신을 부검했다. 일본 경찰의 조사가 끝난 뒤 W씨는 현지에서 아내의 시신을 서둘러 화장하고, 보험사에 전화를 걸어 1억5000만원의 보험금을 달라고 요구했다.

처음 W씨를 의심했던 보험사의 조사원은 경찰 출신 베테랑이다. 보험사 SIU에게는 수사권이 없다. 보험사기 행위로 의심되는 경우 보험사가 직접 수사기관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하게 된다. 보험사 SIU팀은 다양한 사건·사고 현장 등을 조사해야 하기 때문에 전직 지능범죄수사과, 교통사고조사반, 강력계 등 경찰 출신이 많다.

경찰 출신의 베테랑 SIU 직원인 A씨의 눈에는 W씨의 태도와 상황 설명 등에서 여러 허점이 보였다. A씨는 “극단적 선택의 경우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고 통보하자, W씨는 고함을 치며 실망감과 분노를 그대로 드러냈다”면서 “아내를 갑작스럽게 잃은 슬픔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 “W씨에게 보험금을 받으려면 사망 사건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줘야 한다고 했는데,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려 했다”고 덧붙였다.

W씨는 “호텔 방에서 자고 있는데 ‘쿵’ 소리가 들려서 일어나 보니 화장실 앞에 아내가 쓰러져 있었고, 아내가 본인 몸에 주사기를 꽂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씨는 “왜 굳이 외국까지 나가서 스스로 주사기를 꽂아 넣는 어려운 방식을 택했을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조사에서 W씨에게 사기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많다고 판단한 A씨와 보험사 측은 경찰에 해당 사건을 신고했고, 한국과 일본 경찰은 합동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W씨가 아내의 시신을 화장하고 귀국한 터라, 현장에서 추가 단서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일러스트=정다운

그러나 양국 경찰은 일본에서 진행한 부검 결과가 담긴 사체 검안서를 통해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인해 생기는 뇌부종인 급성뇌종창 흔적을 발견했고, 체내에서 치사량의 니코틴 원액이 검출된 것이다. 니코틴 원액은 몸에 3.7㎎ 정도만 들어가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살 여부를 밝히는 일이었다. W씨는 “아내가 우울증을 앓았고, 사망 당일 과음을 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W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살인 계획과 관련한 음성 녹취 파일과 니코틴을 이용한 살해 방법, 유사 사건 등에 대한 검색 기록이 나왔다. 살인 계획이 담긴 일기장도 추가로 발견됐다. 여기에 보험사 SIU와의 통화 과정에서 사망 경위에 대한 설명에 모순점이 많았던 점도 수사에 영향을 미쳤다.

경찰이 확보한 여러 단서를 근거로 검찰은 W씨를 살인죄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W씨에 대해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 과정에서 W씨는 “아내가 극단적 선택을 하려 해 니코틴을 주입하도록 도와줬을 뿐”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기도 했다.

W씨는 2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 받자 항소했고, 결국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가게 됐다. 2019년 10월 대법원은 ‘아내를 잔인하게 살해한 것도 부족해 혐의를 모두 부인하는 등 죄질이 나쁘다’며 무기징역을 최종 확정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최근 보험 사기에 가담하는 범죄자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면서 “살인 등 강력한 범죄에도 10~20대가 가담한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라고 말했다. 그는 “모방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보험사기 조사와 강력 처벌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