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조선비즈와 만난 안소영 서울 하나은행 구로역VIP클럽 PB팀장. /허지윤 기자

‘2.39%.’ 지난해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퇴직연금의 10년간 연수익률이다.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3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적립금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1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오는 12일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디폴트옵션 제도 안에서 퇴직연금을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4일 조선비즈와 만난 안소영 서울 하나은행 구로역VIP클럽 PB팀장은 퇴직연금 전체 수익률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로 “저금리 시대에 퇴직연금을 시중 정기예금 같은 원리금보장상품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안 팀장은 “특히 퇴직연금 가입 당시 운용을 지시했던 상품의 이율이 떨어져도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하지 않고 자동 재예치되도록 하는 등 관심을 소홀히 한 탓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말 기준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의 86.4%(255조4000억원)가 원리금보장형(대기성자금 포함)에 편중된 것으로 조사됐다.

은행 PB센터를 이용하는 고소득 VIP 고객의 퇴직연금 성적표는 다를까. 안 팀장은 PB센터 고객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연 5% 이상 수준으로 보유 중인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그는 “이들은 원리금 보장 상품과 함께 수익 증권, 상장주식펀드(ETF) 등 실적배당형상품에 복수로 운용하고 있다”라면서 “낮은 수익과 손실 확대를 방치하지 않고, 분기별로 포트폴리오 내 자산 비중을 조절하는 등 리밸런싱(Rebalancing·재조정)도 적극적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안소영 PB팀장은 “직장 생활 시작과 함께 퇴직연금을 비롯한 자산 관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두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 PB센터를 이용하는 VIP 고객들은 자녀의 경제활동 시작과 동시에 자녀들도 지출과 저축, 금융 상품 포트폴리오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도록 한다”면서 “좋은 금융 습관을 기르는 게 재테크 성공의 첫 단추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안소영 PB팀장과 일문일답.

그래픽=손민균

— 디폴트옵션에 관해 설명해달라.

“디폴트옵션은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이나 개인형 퇴직연금(IRP)에서 근로자(고객)의 퇴직연금이 방치되지 않도록 적립금을 금융기관이 사전에 약속된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다. DC형 가입자의 90%가 별도의 운용지시를 하지 않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다. DC형 퇴직연금은 기업이 퇴직연금에 일정 금액을 매년 입금하고, 근로자가 직접 투자상품을 결정해 수익을 올리는 상품이다. 디폴트옵션 도입 등으로 운용상품 만기 도래 시 좀 더 높은 투자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상품을 편입시켜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

— 은행 PB센터 고객은 퇴직연금 수익률을 5% 이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운용 사례를 들려달라.

“퇴직연금 수익률 5% 이상대 고객들은 수익증권, ETF와 같은 실적배당형상품을 원리금보장형 상품과 함께 복수로 운용한다. 퇴직연금은 당장 현금화만 안 될 뿐이지 일반적인 투자 방식과 같다. 수익을 실현하면서 원금을 늘려 퇴직연금을 불려 가는 것이다. 최근에는 보수가 저렴하고 기준가 적용이 빠른 ETF를 많이 활용한다. ETF도 보통 한 번에 사지 않고 가격이 5% 빠질 때마다 분할 매수한다. 목표 수익률에 도달하면 매도해 특정 분야 ETF를 장기 보유하지는 않는다. PB센터 고객이 은행에 자주 오기 때문에 수익률 관리가 좀 더 잘 되는 측면도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올해 초 가격이 급등한 2차 전지 관련주로 구성된 ETF에 투자한 뒤 팔아 차익을 실현했고, 최근에는 반도체 분야 ETF를 담고 있다. 가격이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려는 접근이다.”

— 올해부터 개인형 퇴직연금(IRP)과 연금저축 등 연금 계좌에서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한도가 기존 연 7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확대되는 등 연금 세제가 개편됐다. 퇴직연금 수익률을 좀 더 높이려면.

“퇴직연금 투자 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헷지(Hedge·손실 위험 방지) 수단으로 주식 등 위험자산 편입이 필요하다. 시중은행 정기 예금 외에도 금리경쟁력을 갖춘 저축은행 예금과 원리금보장 상품인 증권사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 등을 편입하는 방법도 있다. ELB는 주가, 지수 등을 기초 자산으로 삼아 일정 조건을 만족하면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으로, 중도 상환을 요구하지 않는 한 원금이 보장된다.

퇴직연금 상품은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대표적인 세(稅)테크 상품이다. 올해 1월 1일 납입분부터는 소득금액이나 나이와 관계없이 연금저축과 퇴직연금을 합산한 금액 기준으로 최대 900만원(연금저축 600만원)으로 세액공제 납입 대상 납입 한도를 확대 적용한다. 따라서 기존보다 납입액을 늘리거나 과거에 세액공제 대상 납입 한도를 초과한 부분이 있다면 ‘납입연도 전환특례’ 신청을 통해 추가 혜택을 누리기를 권한다. 세액공제 대상 납입 한도 외에도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1800만원까지 납입할 여유가 된다면 추가 납입을 추천한다.”

그래픽=김성규

— 월급여 300만원 중후반대인 20대 김모씨는 급여의 절반가량을 예·적금과 개인 주식계좌를 통해 우리나라 및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그에게 권하는 금융 상품은.

“만 34세 이하 사회 초년생이라면, 지출을 좀 더 줄이고 저축 비중을 늘려야 한다. 지금은 한시적으로 나온 정책 금융 상품인 청년도약계좌 가입을 1순위로 삼아야 한다. 청년도약계좌는 5년 동안 매달 70만원씩 납입하면 5000만원 안팎의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상품이다. 가입 후 만기 5년간 월 70만원 한도에서 자유롭게 납입할 수 있고, 중간에 납입하지 않아도 계좌는 유지된다. 매월 납입한 금액에 대한 정부 기여금은 다음 달에 적립된다. 한해 총급여가 6000만원 이하일 경우 정부 기여금, 비과세 혜택을 모두 받게 된다. 총급여가 6000만원 초과∼7500만원 이하면 정부 기여금 없이 비과세 혜택만 받는다. 지난 3일부터 2주 동안 신청을 다시 받는다.

청년도약계좌를 제외하면, 개인형 IRP가 1순위다. 그다음은 2순위 연금저축계좌(보험), 3순위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등으로 절세와 투자가 함께 되는 상품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투자하기를 권한다. 연금저축과 IRP는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말정산에 대비할 수 있는 핵심 상품이다. ISA는 연간 납입 한도가 2000만원으로, 보통 의무납입 기간 3년 이상 적립 시 순이익의 200만원(농어민·청년형 상품은 400만원)까지 비과세다. 초과분은 9.9%(지방소득세 포함)로 분리 과세된다. 단 의무 보유기간인 3년을 채웠을 때 비과세 혜택을 볼 수 있다.

연금계좌에서 해외ETF나 해외펀드 거래 시 수익금이 별도로 과세되지 않고 연금 지급 시 3.3~5.5% 연금소득세 납부(연 1200만원 초과 시 종합소득세 과세가능)로 저율 과세된다. 과세이연 효과도 있어 해외 투자 시 연금계좌를 활용하는데 유리하다.”

— IRP 활용을 추천하는 이유는.

“IRP는 불입 원금에 붙은 수익이 인출할 때까지 과세이연(세금 내는 시점을 일정 기한 연기해 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과세이연으로 복리 효과(재투자수익)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또 중도 해지를 하더라도 수익의 16.5%를 기타소득세로 내고 과세가 종결된다. 현행 이자소득세 15.4%보다 1.1%를 더 내긴 하지만 금융소득종합과세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종합과세대상자라면 IRP로 자산을 운용하는 것이 유리하다. 연금으로 인출하면 이자소득세(15.4%) 대비 9.9%나 낮은 연금소득세(5.5%~3.3%)로 저율과세 되는 점도 장점이다.

단, 이때 과세대상소득은 세액공제받은 납입금액과 연금계좌의 운용소득임은 주의해야 한다. IRP도 정기예금, ELS, 국내펀드, 해외펀드 등 다양한 투자상품으로 운용할 수 있는데, 어떤 상품에서 발생한 수익이든 연금 수령 시 5.5%~3.3%를 납부하면 된다. 본인 또는 부양가족이 3개월 이상 요양이 필요해 목돈을 인출한 경우 만 55세 이전이라도 낮은 연금소득세(3.3~5.5%)가 적용된다.”

— 목돈 나갈 일이 많은 20~30대와 노후 준비를 잘하고 싶은 40~50대, 은퇴를 앞둔 60대 등 연령대별 퇴직연금 운용 전략과 추천 상품은.

“연금 적립기에는 보수가 저렴하고 투자자의 생애주기에 따라 은퇴시기(Target Date)까지 투자 목표 시점을 명시해 위험자산 배분 비중을 조절하며 펀드가 알아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는 자산배분 펀드를 활용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은퇴까지 남은 시간과 수익성, 안정성, 개인 투자 성향 등을 고려해 연금 포트폴리오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은퇴 준비는 빨리 시작할수록 좋다. 20대는 주식, 상장주식펀드(ETF), 목표 은퇴 시점에 맞춰 자산을 배분하는 펀드인 타깃데이트펀드(TDF) 등 위험 자산을 70%, 정기 예금과 채권 등 금리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있는 원리금 보장형 상품을 30% 비중으로 가져가기를 제안한다. 30대도 위험자산 65%, 안전자산 35%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적극적인 투자로 목돈 마련 기간을 단축하는 데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40대부터는 안전 자산을 좀 더 늘릴 필요가 있다. 위험자산 45%, 안전자산 55%로 구성해 실적배당형상품으로 자산을 증식하는데 목표 두기를 권한다. 50대는 특히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로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두는 게 중요하다. 이에 따라 위험자산 35%, 안전자산 65% 비중을 제안한다. 은퇴를 앞둔 60대 등은 위험자산 10%, 안전자산 90%로 구성하며 여생을 고려해 노후 자산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 은퇴 이후 연금 수령액을 늘리 수 있는 방법은.

“은퇴 이후 연금 인출기에 추천하는 상품으로 TIF(Target income fund), RIF(Retirement income Fund) 등 노후자산 관리에 특화된 맞춤형 펀드가 있다. 이는 이자, 배당 등 정기적인 현금흐름으로 발생하는 수익을 주로 추구하는 글로벌 인컴자산 배분 펀드로 세계 채권, 배당주 등 글로벌 인컴자산에 광범위하게 분산 투자한다. 인컴자산은 시세 차익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이자나 배당 등의 현금을 얻을 수 있는 채권, 배당주, 리츠, 인프라 등의 자산을 칭한다.

은퇴 이후에는 장수 및 물가 상승을 대비해 은퇴자산의 가치를 최대한 지키고 은퇴 자산이 조기에 소진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중요한데, 세계 인컴자산에 분산 투자해 가격 급락 위험과 변동성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둔 펀드라고 할 수 있다. 정기적으로 생활자금을 인출할 수 있고, 갑작스러운 목돈 인출 상황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 안소영 PB는

하나은행구로역 PB팀장, 재무설계사(AFPK), 자산관리사 FP, 은퇴설계전문가(ARPS), 와인소믈리에WSET 등 자격 보유. 2023상반기우수PB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