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기가 갈수록 지능화, 고도화되면서 보험사에서 이들의 범죄 행각을 추적해 조사하는 보험사기 특별조사팀 SIU(Special Investigation Unit)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지난해 국민적인 공분을 일으킨 가평계곡 살인사건도 주범 이은해의 생명보험금 청구 과정을 의심스럽게 탐지한 보험사 SIU의 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최근 몇 년간 발생했던 각양각색의 보험사기 유형과 이를 추적해 범죄 행각을 밝혀내고 선량한 고객에게 돌아가야 할 보험금을 지킨 보험사 SIU의 사례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그래픽=정서희

“이봐, 좀 황당하지 않아? 배달을 하다 사고가 났다는데, 왜 사고 시간이 거의 다 새벽이나 오전 시간대야?”

A손해보험 SIU의 이모 팀장은 지난 2019년 보험금 청구 내역을 들여다보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동료 직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시 대구 지역에서 유독 배달 오토바이의 사고 건수가 급증했는데, 사고 시간대가 평소 보험금 청구를 위해 접수되는 시간과 달랐기 때문이다.

배달 오토바이 사고는 보통 음식 주문량이 몰리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오후 5시부터 오후 7시 사이에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당시 A손해보험에 접수된 대구 지역의 오토바이 사고는 상당수가 음식 배달이 거의 없는 시간대에 발생했다. 음식 배달이 아닌 문서나 다른 물품을 운반하는 퀵서비스용 오토바이 사고라고 봐도 사고 건수가 이상할 만큼 많았다.

의심스러운 정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고 피해자의 대부분은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또 오토바이 사고는 대부분 혼자 운행을 하다 사고가 나는데, 대구 지역에서 당시 접수된 사고 가운데 상당수는 2명이 타고 가던 중 발생했다. 또 1년도 안 돼 같은 사람이 두 번 이상 사고를 당했다며 보험금을 청구한 사례도 있었다.

보험사기의 정황이 짙다고 판단한 이 팀장은 A손해보험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보험사기징후 분석시스템 IFDS(Insurance Fraud Detection System)를 활용해 최근 3년간 2건 이상의 오토바이 사고 신고를 한 사람을 위주로 조사대상을 추출했다. 또 다른 보험사들과도 관련 내용을 공유하고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 다발자 사례를 모았다.

IFDS를 통한 조사 결과 1년간 보험사기 의심 정황이 있는 것으로 추려진 대구 오토바이 사고 신고자들은 12개 그룹, 200명에 달했다. 2019년 금융 시장을 시끄럽게 한 대구 오토바이 집단 보험사기 사건의 실체가 처음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지난 2019년 보험업계를 들썩이게 한 대구 지역의 10~20대 배달 오토바이 사기단 사건은 의심스러운 정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정밀한 현장 조사를 진행한 보험사 SIU에 의해 실체가 드러났다. 사진은 서울 중구 만리재로에서 오토바이 배달 기사들을 경찰이 통제하는 모습. /뉴스1

◇ 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지인이었다

보험사들이 사기 의심 정황을 포착해도 금융감독원과 수사 당국이 공조해 합동 조사에 나서기 위해선 먼저 상당한 분량의 증거가 필요했다. 이 때문에 이 팀장을 포함한 A손해보험 SIU가 대구 오토바이 사고 피해자 그룹화 작업 이후 더 발 빠르게 움직였다.

A손해보험 SIU는 우선 전체 의심 사례 중 특히 고의 사고의 정황이 뚜렷한 신고 내역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 팀장은 “당시 대구 지역의 배달 차량 사고 피해자들은 하루 10시간이 넘는 배달 업무로 사고가 당연히 많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조사 결과 사고 당시 배달통에는 음식이나 운반 물품이 없었던 사례도 많았다”고 말했다.

금감원, 경찰과의 합동 조사가 시작된 이후에는 사고 동영상 분석과 함께 고의사고의 정황이 있는 사람에 대해 정밀한 인적 조사까지 진행했다. SIU와 조사단은 사고 가해자와 피해자들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 계정을 조사해 상당수가 지인이었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앞서 신고된 사고에서는 가해자였던 사람이 다음에 보험사에 신고할 때는 피해자로 둔갑한 사례까지 있었다.

이들이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사용한 방식은 과거 빈번하게 발생했던 오토바이 교통사고 사기와 비슷했다. 주로 후미진 골목길에서 전방 차량에 양보를 하기 위해 후진하는 차에 접근해 고의로 사고를 내는 경우가 많았고, 비보호로 주행하는 우회전 코스에서 갑자기 나타나 사고를 유발하기도 했다.

2019년 대구 배달 오토바이 사기단 사건의 가담자 중 상당수는 SNS 등을 통해 알게 된 지인들이었다. 사건의 주범들은 "전혀 아프지 않은 경미한 사고를 내면 수백만원의 보험금을 타 낼 수 있다"며 주로 10~20대를 대상으로 가담자들을 모집했다. /보험업계 제공

◇ 350여명 가담한 대규모 사기단으로 진화

SIU와 금감원, 경찰의 조사 결과 이들의 범행은 주로 2018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동네와 학교에서 만난 친구, 선후배 사이였던 이들은 사고를 일으켜 합의금과 보험금으로 제법 많은 돈을 손에 만지게 되자, SNS 등을 통해 추가 가담자들을 모아 점차 대규모 조직이 됐다.

범행의 방식도 진화했다. 처음에는 배달 오토바이에서 혼자 주행하다 고의로 사고를 냈지만, 이후에는 뒷좌석에 동승자를 태웠다. 이들은 가벼운 교통사고를 낸 후 한 사람당 100만원에서 200만원의 보험금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SNS로 보험사기에 가담하는 사람이 늘자, 한술 더 떠 오토바이 대신 차량을 구입해 본격적인 교통사고 보험사기에 나서기도 했다.

A손해보험 SIU의 추적으로 2019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합동 조사를 통해 수사 당국은 20대 권모씨를 포함, 대구 지역의 배달 차량 사기 사건에 가담한 350여명을 적발하고 이 중 주범 13명을 구속했다. 이들의 나이는 대부분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으로 가벼운 교통사고를 통해 거액의 돈을 챙길 수 있다는 유혹에 끌려 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이들이 보험사들로부터 부당하게 수령한 돈은 60억원에 달했다. 이 팀장과 A손해보험 SIU는 사회초년생들의 조직화 된 보험사기 범죄를 조기에 적발하고 회사의 자산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20년 금감원이 주최한 ‘보험사기 방지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