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롯손해보험 제공

한화손해보험이 주도해 만든 디지털 보험사 캐롯손해보험이 출범 4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실적 반등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대표이사를 포함한 경영진을 교체하는 강수까지 뒀지만, 올해 1분기에도 100억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며 최대주주인 한화손보의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19일 손해보험협회에 따르면 캐롯손보는 올해 1분기에 109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166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던 지난해 1분기에 비해서는 적자 폭이 줄었지만, 다른 손해보험사가 같은 기간 순이익이 큰 폭으로 증가한 점을 고려하면 상황이 눈에 띄게 호전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성적이다.

업계 1위 삼성화재의 경우 1분기 순이익이 613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6% 늘었다. 메리츠화재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5% 증가한 4047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롯데손해보험과 농협손해보험도 각각 794억원, 789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등 대부분의 손보사들이 준수한 실적을 기록했다.

반면 디지털 손보사들은 1분기에 모두 적자를 냈다. 하나손해보험과 신한EZ손해보험은 각각 83억원, 9억원의 손실을 봤고, 최근 매각설이 돌고 있는 카카오페이손해보험도 8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오랜 기간 축적된 브랜드 인지도와 탄탄한 영업망을 갖춘 전통 손보사들에 밀려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것은 캐롯손보뿐 아니라 디지털 손보사 전반에 해당되는 얘기다.

그러나 캐롯손보의 경우 업계에서 가장 앞선 2019년 5월에 설립됐고, 55%의 지분을 가진 한화손보 외에 다른 유명 투자사들도 주주로 참여해 자금력도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러 이점에도 출범 4년이 넘도록 다른 후발주자들과 비교해 차별화된 강점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캐롯손보는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상품에 가입하고 여러 혁신적인 서비스를 출시해 전통적인 보험 시장을 흔들 '메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며 출범했다. 특히 한화그룹의 금융 계열사 경영을 맡고 있는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이 최고디지털책임자(CDO)를 맡으면서 캐롯손보의 설립 작업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캐롯손보 출범 당시 한화손보뿐 아니라 현대자동차와 SK텔레콤, 알토스벤처스, 스틱인베스트먼트 등 여러 대기업과 벤처캐피털이 주주로 참여한 것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 사장이 주도하는 사업이라는 점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캐롯손해보험의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주행거리만큼 보험료를 낸다는 발상으로 소비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가입 건수가 매년 크게 늘었다. 그러나 일정 보험료가 꾸준히 들어오는 타사 상품과 달리 계약 건수에 비해 보험료 납입액이 적어 실적 부진을 벗어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캐롯손해보험 제공

실제로 캐롯손보는 퍼마일 자동차보험이란 신상품을 선보이며 소비자의 주목을 끄는 데 성공했다.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주행거리를 측정해 고객이 탄 만큼만 보험료를 매달 후불로 결제하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출시 3년 만인 올해 초 누적 가입자 수 100만건을 돌파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캐롯손보는 출범 후 단 한 차례도 흑자를 내지 못한 채 매년 손실 폭이 커지고 있다. 설립 이듬해인 2020년 381억원의 순손실을 낸 데 이어 2021년에도 65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손실 규모는 795억원에 달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들은 캐롯손보가 출범 후 줄곧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이유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사업 모델을 꼽는다. 여러 손보사가 장기 보장성 보험을 주로 판매하고 있는 반면 캐롯손보는 자동차보험을 제외하면 주로 보험료가 1만원 안팎에 불과한 소액 상품을 팔았다. 설계사를 두지 않는 디지털 보험사의 한계로 많은 수익이 나는 상품 대신 온라인으로 편하게 가입하지만 수익성은 없는 상품을 판매한 것이다.

주력 상품인 퍼마일 자동차보험도 실적 개선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주행 빈도나 거리와 관계 없이 일정 보험료를 계속 벌어들이는 타사 상품과 달리 자동차 이용량이 적은 소비자들에게서 거두는 돈이 적다 보니 늘어나는 계약 건수에 비해 원수보험료는 기대치를 밑돌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퍼마일 자동차보험은 매년 증가하는 신규 계약으로 책임준비금 부담만 커져 실적 부진의 또 다른 요인이 되고 있다.

과도한 마케팅, 홍보 비용을 쓰고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캐롯손보는 올해 초에는 데이원자산운용이라는 회사가 인수한 옛 고양 오리온 농구단과 30억원 규모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최근 고양 농구단은 데이원자산운용의 경영 악화로 한국농구연맹(KBL)에 납부해야 할 특별회비를 내지 못한 데 이어 선수 임금까지 체불해 물의를 빚고 있다.

구단 운영 과정에서 잡음이 커지고 비난이 이어지자, 캐롯손보는 4년 계약을 불과 1년 만에 해지했다. 실적 부진이 지속된 가운데 스포츠 마케팅에 많은 돈을 쓰고도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만 훼손시킨 경영진의 판단 착오였다.

캐롯손보는 지난해 8월 고양 농구단과 팀 이름을 '고양 캐롯 점퍼스'로 하는 내용의 네이밍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후 이 농구단이 선수 임금 체불 등으로 사회적 비난을 받자, 계약을 중도 해지했다. /뉴스1

한화손보는 캐롯손보의 경영난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9월 최고경영자(CEO)를 문효일 대표이사로 교체했다. 올해 5월에는 현대차그룹 광고계열사인 이노션과 한컴 등에서 오랜 기간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로 일했던 배주영씨를 최고마케팅책임자(CMO)로 선임하기도 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경영진 교체와 마케팅 강화를 통해 소비자 인지도를 높이려는 시도도 좋지만, 유상증자 등을 통한 대규모 자금 확충과 사업 구조 재편 없이는 캐롯손보가 짧은 기간 안에 실적을 반등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