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지난 15일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 /뉴스1

주택 매매가격이 전세가격보다 떨어지는 역전세와 같은 전세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주택에 대한 전세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집값 왜곡으로 이어지고 있는 만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상에 전세대출을 포함하는 등 전세대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8일 KB경영연구소의 ‘전세제도의 구조적 리스크 점검과 정책 제언’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제도는 사적 금융을 활용한 주택구입 수단으로 역할을 해왔으나, 주택경기 호황기의 투자 행위가 주택경기 침체 시 임차인의 전세보증금 반환 및 손실로 확대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유하고 있다.

전세제도는 주택가격 하락 시 임차인에게 손실 전가가 가능하다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집주인은 주택 구입과 동시에 전세 계약이 가능해 전세보증금만으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무자본 갭투자’를 할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경우일수록 임차인도 보증금을 반환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무자본 갭투자를 기반으로 한 조직적인 전세사기가 가능한 구조다.

전세사기와 같은 악의적인 행위가 아니더라도 여러 주택에 투자해 동시다발적으로 손실이 발생 할 경우 대처가 어려워져 집주인의 손실 규모는 투자금 한도로 제한되고, 투자금을 초과하는 손실은 전세 세입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될 수 있다.

임차인이 집주인의 세금 체납 여부, 신용상태 등을 확인할 수 없어 전세 계약 때부터 ‘전세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노출된다는 점도 문제다.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는 대항력은 확정일자, 전입신고, 거주의 3가지 요건을 갖췄을 때 효력이 발생한다. 하지만 전입신고의 경우 다음 날 0시부터 효력이 발생함에 따라 임대차계약 당일 근저당이 설정되면 세입자는 우선권을 상실하게 된다. 임대인은 임대차계약 당일 대출을 받고 근저당 설정 등이 가능해 임차인의 대항력이 절대적으로 약한 상황을 악용할 수 있다.

KB경영연구소 제공

KB경영연구소는 이러한 전세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세제도 관련 금융 시스템 개선을 개선하고 보증보험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유동성 증가가 주택가격 왜곡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전세자금대출을 DSR에 포함시키고, 매매 전세비(전세가격/매매가격)가 70% 이상인 주택에 대해서는 전세자금대출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강민석 KB경영연구소 박사는 “전세자금대출도 만기 시 돌려받는 전세보증금으로 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DSR 산정에서 제외하고 있으나 건당 대출 규모가 크고 과도한 대출로 인한 주택시장의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해 DSR 산정에 포함하는 것에 대해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며 “투자자가 전세를 활용해 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이 높은 고(高)LTV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DSR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라고 했다.

다만, 임대인이 전세보증금 반환 용도로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에 한해 한시적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 한도를 LTV 70%까지 허용하고, 대출신청 금액이 1억5000만원 이하인 경우에는 DSR적용도 배제해 임차인의 안정적인 퇴거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임대인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의무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KB경영연구소는 임대인 정보 부족으로 인한 전세거래의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서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임대인 관련 정보 확인’과 ‘매매전세비에 대한 설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임차인 전입신고’ 효력을 신고 당일부터 적용하는 한편 금융기관들이 대출 실행 시 확정일자 정보를 조회할 수 있도록 전입시스템을 개선할 것도 제안했다.

아울러 주택가격 급락 시 금융 기관 등이 주택을 구입해 공공임대주택으로 운영하게 하는 ‘기업형 임대사업’ 확대도 주택 경기 연착륙 및 부동산 임대차 시장 거래 안정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봤다.

강 박사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임차 형태인 ‘전세제도’가 지금까지는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 사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왔지만, 최근 과도한 갭투자로 인해 전세사기, 깡통 전세 문제 등이 발생함에 따라 제도적인 보완이 절실히 필요해졌다”라며 “단기적으로는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되 장기적으로는 전세 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 해결을 위한 시스템 개선 등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