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서울스카이 전망대를 찾은 한 청년이 휴대폰으로 잠실 아파트 단지를 휴대폰 사진으로 찍고 있는 모습. /뉴스1

최근 경기침체와 고금리 여파로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빚을 갚지 못해 위기에 몰린 차주(돈 빌린 사람)가 늘고 있다. 집을 포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집값이 대출금 밑으로 떨어져 다른 재산에 대한 압류와 채권 추심까지 진행된다면 어떨까. 이들은 벼랑 끝에 몰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 2018년 도입된 제도가 '유한책임(비소구)' 대출이다.

유한책임 대출은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은 뒤 집값이 떨어져도 집만 넘기면 더는 빚을 갚지 않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시가 3억원짜리 집을 담보로 2억원을 빌렸다가 집값이 폭락해서 1억5000만원으로 떨어졌을 경우 경매 등으로 집을 처분해 1억5000만원을 갚으면 나머지 대출금 5000만원은 갚지 않아도 되는 식이다. 못 갚은 나머지 대출금은 돈을 빌려준 대출자가 부담을 지는 구조다. 정책 주택담보대출 상품인 '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 적격대출'을 통해 이용할 수 있다.

유한책임 대출 비중은 꾸준히 늘고 있다. 정부가 직접 운용하는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의 경우 그 비중이 50%를 넘어섰다. 문제는 시중은행이 판매하는 적격대출의 유한책임 비중이 1%가 채 안 된다는 것이다. 리스크가 큰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최근 주택 시장 침체가 지속되고 있어 은행도 취약 차주 보호를 위한 '안전망' 확대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주택금융공사로부터 제출받은 '유한책임 주담대 공급실적' 내역에 따르면 지난해 실행된 적격대출 1조5488억원 중 유한책임형은 73억원으로 0.5%에 불과했다. 올해 2월 기준으로는 유한책임형의 비중은 0.9%다. 적격대출은 특례보금자리론에 흡수돼 3월부터 잠정적으로 판매가 중단된 상태다.

2018년 제도가 처음 도입됐던 당시 적격대출의 유한책임형 비중이 0.03%였던 것과 비교해서는 오른 수준이나, 보금자리론·디딤돌대출에 비해 크게 낮다. 올해 4월 기준 보금자리론과 디딤돌대출의 유한책임형 비중은 55.6%(8조6072억원), 62.4%(1조3530억원)다. 2018년엔 각각 4.2%(3291억원), 16.2%(1조4324억원)였다.

그래픽=손민균

유독 적격대출만 유한책임형 비중이 낮은 것은 은행들이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금공과 주택도시보증공사가 각각 자금을 대고 책임을 지는 보금자리론, 디딤돌대출과 달리, 적격대출은 시중은행이 주금공을 대신해 상품을 판매하고 주금공에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은행이 위험을 그대로 져야 하는 만큼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후관리의 책임이 있는 은행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제도다"라며 "대출 상담 시 적극적으로 권유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은행들은 유한책임형 주담대 상품을 찾는 고객이 거의 없다고 반박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이미 받고 있는데 유한책임형까지 선택할 경우 대출 한도는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며 "보통 집 살 때 최대한도로 대출받기를 원하는 데다 그동안 집값이 계속해서 올랐던 만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고객이 많지 않았다"고 했다.

집값이 상승세였던 지난 5년간 담보로 잡힌 주택을 처분한 가격이 대출 잔액보다 더 낮게 책정된 사례는 1건에 불과했다. 그러나 주택 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어 취약 차주를 위한 '안전판'인 유한책임 주담대가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인 만큼 은행도 적극적으로 유한책임 주담대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제도의 안착이 중요하다"고 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 국가 상당수가 유한책임 주담대를 채택하고 있다"며 "'빌려준 사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은행도 리스크 관리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 등 순기능이 많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박재호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적격대출의 유한책임 대출 실적에 대해 지적했는데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라며 "대출자의 책임 확대가 필요하며 주택 가격 하락에 따른 하우스푸어 방지 대책으로서 실적 제고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