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요금 인상, 물가 상승, 경기 악화, 고금리 여파로 폐업을 결정한 소상공인들이 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오전 서울시내 한 폐업 매장 바닥에 대출 전단지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이모(48)씨는 지난달 대출 이자 상환을 위해 카드론(장기카드대출)을 받았다. 이씨는 4년 전 식당을 인수하면서 4억5000만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감염병 대유행)이 터지면서 정부 소상공인 대출을 추가로 받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손님이 끊기면서 배달을 시작했지만, 경쟁이 치열하고 수수료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없었다. 인건비와 임대료, 전기요금 등 고정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결국 지난해 2금융권에서 연 12%에 달하는 금리로 8000만원을 또 대출받았다. 이씨는 한 달 이자 비용만 50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번 달에는 가족 보험까지 모두 해지했다.

이씨는 "오는 9월 소상공인 대출 원금·이자 상환 유예가 끝나면 이자 비용이 600만원까지 오를 것 같다"며 "폐업을 하고 폐업 신고를 하면 사업자 대출을 당장 갚아야 한다. 가게 문들 닫고 폐업 신고도 못하는 업주도 많다"고 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난 소상공인들이 다중채무자(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채무자)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피해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데다 고금리와 물가 상승, 공공 요금 인상까지 겹치면서 소상공인들이 급전 마련을 위해 여러 금융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제도권 금융에서 돈을 빌리지 못해 불법 사채를 쓰는 소상공인이 급증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 때는 정부 지원금이라도 있었는데,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전환 이후 이마저도 사라졌다며 실효성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 시한폭탄 자영업자 대출

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영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자영업자 대출잔액은 1019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다중채무자 대출잔액은 720조3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자영업자 대출은 909조2000억원에서 110조6000억원 증가했는데, 다중채무자 대출이 630조5000억원에서 89조8000억원 늘어나면서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체 자영업자 대출에서 다중채무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70%를 넘어섰다. 자영업자 차주(대출받은 사람)는 262만1000명에서 307만명으로 44만9000명(17.1%) 늘었다. 이 중 다중채무자이면서 신용이 낮거나(7~10등급) 소득이 낮은(하위 30%) 취약차주는 28만1000명에서 33만8000명으로 5만7000명(20.3%) 증가했다.

늘어난 다중채무자는 주로 비은행권에서 돈을 빌렸다. 지난해 말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618조5000억원(60.6%), 비은행권은 401조3000억원(39.4%)이었다. 전년 동기에는 은행권 대출이 586조3000억원(64.5%), 비은행권이 322조9000억원(35.5%)이었다. 1년 간 은행권 자영업자 대출이 5.5% 늘었는데, 비은행권은 24.3% 증가한 것이다.

특히 저축은행과 여신전문금융회사, 대부업 등 고금리로 대출을 취급하는 금융권 대출잔액이 1년 만에 48조5000억원에서 55조9000억원으로 14.8%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금융권에서는 소상공인 다중채무자 문제가 오는 9월 이후 터질 시한폭탄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2020년 초 코로나19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게 대출 원금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을 유예했다. 여러 차례 연장을 반복했던 이 금융지원 방안은 오는 9월 종료된다.

문제는 금융사들이 이자를 내지 않는 차주의 상환 능력을 파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보통 금융사들은 이자 상환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부실채권으로 분류하고 관리에 들어간다. 그런데 소상공인 대출은 지난 3년간 이자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정상' 여신으로 분류돼 있다. 다중채무자가 급증한다는 것은 정상으로 분류된 소상공인 대출 중 상당수가 '무늬만 정상'인 부실채권일 가능성이 크다는 방증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소상공인 대출 이자상환 유예 대책을 또 연장할지 우려된다"며 "부실은 점점 커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 이를 계속 미루고 꺼내볼 용기를 내지 못해선 안 된다"고 했다.

◇ "장사 못하게 하더니 이제 와 모럴해저드?"

서울 영등포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최진영(45)씨는 소상공인단체들이 정부에 소상공인 지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는 기사 댓글을 보고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자영업자를 왜 세금으로 지원해야 하냐'는 댓글이 여럿 보였기 때문이다. 최씨는 "코로나19 때 정부가 장사를 못하게 해놓고 이제 와서 세금으로 지원해 주면 안 된다는 글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 빚을 추가로 내줘 연명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소상공인 다중채무자가 증가하고 있고, 한계 차주들은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있는데, 또 대출을 해주는 방식으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과감한 부채 탕감으로 자영업자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구다.

이성원 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경제 상황이 좋아서 소상공인들의 매출이나 실질 소득이 증가하면 그만큼 부채 문제에 대한 부담이 덜하겠지만, 지금은 역대 최악의 상황이다"라며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대선 공약 1호가 자영업자들에 대한 완전한 손실보상인 만큼, 보다 과감한 부채 탕감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일러스트=손민균

윤석열 정부도 '소상공인 살리기'를 위해 ▲데이터 기반의 손실 보상 ▲긴급 구제식 채무조정 ▲맞춤형 금융공급 ▲임대료·세금·공공요금 등 경영 부담 경감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대표적인 소상공인 지원 대책은 '새출발기금'이다.

새출발기금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30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부실 또는 부실 우려 채권을 사들여 상환 기간을 늘려주거나 금리를 낮춰준다. 개인사업자·소상공인 중 취약차주가 대상이다. 금융위원회는 기금 수혜 대상자를 최대 4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신용·보증채무 중 재산가액을 초과하는 순(純) 부채에 한해 최대 80%까지 원금조정을 해준다.

다만 기금을 이용할 경우 일부 경제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라 소상공인 안전망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원금 조정을 받은 소상공인은 새출발기금 이용 정보를 신용정보원에 등록하고 2년간 공공정보로 등록해 전 금융권, 신용정보회사에 공유하는 등 신용상 불이익을 받는다. 사실상 정상적인 금융 거래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소상공인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금융 당국은 부채 탕감을 받기 위해 고의로 연체하는 도덕적 해이(모럴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생산성지원과 긴급자금대출을 결합한 '한국형 PPP(생산성보호프로그램)'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한국형 PPP는 미국 정부가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등을 위해 직원 급여를 위한 대출을 보증하고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상환을 면제해 주는 'PPP(Paycheck Protection Program)제도'를 한국형으로 변형한 프로그램이다. 한국형 PPP는 소상공인에게 우선 대출을 해주고 직원 급여, 인건비, 공공요금 등을 지출하면이를 재난지원금으로 간주해 대출금을 일부 탕감하는 식이다.

임채운 서강대 경영대학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 피해지원책은 즉흥적이고 산발적이며 지원대상 논란 등을 야기하고 투입예산 대비 지원 효과가 떨어진다"며 "생산성지원과 긴급자금대출을 결합한 한국형 PPP 도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한국형 PPP 역시 은행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고, 사회 안전망 강화와 실업률 개선을 위해 직원 급여를 보장해 주는 PPP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