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의 대출 연체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건전성 관리에 경고등이 켜졌다. 금융 당국은 은행들이 충당금을 선제적으로 적립하고 있고, 연체율 역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소상공인대출과 가계대출 연체율의 확연한 상승세가 하반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금융권에서는 연체율 상승의 근본적인 문제는 은행 건전성이 아닌 취약차주(대출받은 사람)가 이자를 갚지 못해 차상위계층(2023년 4인 가구 기준 소득이 270만482원 이하인 가구)으로 전락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저신용자가 증가하면 제도권 금융사를 이용하지 못한 차주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고, 경제 활동 인구도 줄어든다. 결국 이들에 대한 회생은 세금으로 지원해야 한다.
오태록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원은 "양적 지원 형태를 지속한다면 상환유예조치 등이 종료됐을 때 부실 확대로 채무조정 수요가 늘고 사회적 비용도 커질 것"이라며 "상환부담 가중도가 급증하는 차주군을 중심으로 건전성 관리를 강화함과 동시에 대출 접근성과 상환의 양면에서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는 저소득층의 동향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지만...연체율 상승세 뚜렷
31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원화 대출 연체율은 평균 0.304%로, 전달보다 0.032%포인트 올랐다. 전년 동월(0.186%)보다는 0.118%포인트 상승했다.
이 가운데 가계대출 연체율은 0.270%로, 전달보다 0.032%포인트 상승했고, 기업 대출 연체율(0.328%)도 전달 대비 0.034%포인트 올랐다. 지난달 5대 은행에서 발생한 신규 연체율은 평균 0.082%로, 전달보다 0.008%포인트 상승했다. 신규 연체율은 해당 월의 신규 연체 발생액을 전달 말의 대출 잔액으로 나눈 것이다.
금융권 연체율은 금리상승, 경기둔화, 부동산시장 침체 등의 이유로 지난해 이후 계속 상승하고 있다. 금감원은 현재 연체율 수준이 코로나19 이전 또는 2014~2016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저축은행 사태 시기와 비교해 양호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부동산 가격 급등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신용대출을 끌어모은 '영끌족'과 코로나19 시기 다중채무로 버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고통이 하반기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대출금리의 갱신 주기를 고려할 때 지난해 하반기 기준금리 상승분이 올해 하반기부터 거의 모든 차주에게 반영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한 오는 9월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등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면 연체율 급증과 대출 부실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채무불이행자 등록되면 경제활동 못해
취약차주의 문제는 연체가 지속될 경우 채무불이행자로 등록돼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현재 90일 이상 대출 이자를 연체하면 금융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로 등록돼 모든 금융 거래가 중단된다. 신용점수도 300점대(옛 신용등급 9·10등급) 이하로 떨어지고 신규 대출뿐 아니라 신용카드 발급·사용에 제한을 받는 등 모든 형태의 신용거래를 할 수 없게 된다.
금융 당국에 따르면 매해 워크아웃이나 개인회생·파산 등 공적제도를 통해 채무를 변제하거나 조정받지 못해 장기 연체자로 전락하는 차주들이 1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차주들은 취업에도 어려움을 겪어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한다.
이들은 제도권 금융사를 이용하지 못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게 된다. 실제 지난해 기준금리의 가파른 인상으로 2금융권에 이어 대부업체마저 대출 문턱을 높이거나 규모를 축소해 불법 사금융을 찾는 이들이 증가했다.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69개 대부업체의 올해 1분기 신규대출은 205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1조1344억원)보다 81.9%, 직전 분기(3709억원)보다 44.7% 감소한 수치다. 신규로 대출을 받은 사람 역시 같은 기간 9만1024명에서 2만6767명으로 줄었다.
돈을 빌릴 길이 막힌 차주들은 불법사금융의 문을 두드렸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19일~지난 1월 31일 저신용자(6~10등급) 5478명과 대부업체 23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지난해 대부업체에서도 돈을 빌리지 못해 불법 사금융 시장을 찾은 저신용자는 3만9000~7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3만7000~5만6000명)보다 2000~1만5000명 늘어난 규모다. 이들이 불법 사금융에서 빌린 돈은 6800억~1조23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역시 전년 6400억~9700억원보다 400억~2600억원 증가한 규모다.
연체율에 따른 한국 경제의 경고등은 여러 곳에서 울리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올 1분기 동향 및 2분기 전망)'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은행이 예상한 2분기 가계 신용위험지수는 42를 기록했다. 이는 10%를 넘나들던 연체율로 신용위험이 커진 2003년 2~3분기(44) 카드사태 수준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코로나19 영향이 본격화한 2020년 2분기(40)보다도 높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현재 연체율 현상 유지를 목표로 관리하고 있는데,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며 "대출 만기 시점을 봤을 때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분이 반영되는 오는 4분기에 연체율이 급증할 것으로 보여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