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리플 가격이 1000원 정도였을 때 비상금을 털어 구매했는데, 가격이 폭락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한때 200%가 넘는 수익률을 올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본전만 찾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경기 하남시에 거주하는 최모(30)씨는 현재 리플을 처분하기도 계속 들고 있기도 곤란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그가 처음 리플에 투자하기 시작했을 때인 2021년에는 리플 한 개당 1000원에 육박했다. 그러나 미국 감독 당국이 리플을 미등록 증권으로 지목하면서 가격이 지난해 7월엔 400원대로 폭삭 내려앉았다.
전체 가상화폐 중 시가총액 6위를 기록 중인 리플(XRP) 코인에 대한 미국 법원의 증권성 판단 여부가 미뤄지면서 국내 투자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리플 소송 결과 발표가 올해를 넘길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오고 있어 이러한 상황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3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리플 소송은 지난 3월 말로 예상됐으나, 현재까지도 결론이 나지 않았다. 리플은 지난 2012년 발행된 가상화폐로 비트코인보다 거래 속도가 빠르고 수수료 또한 매우 낮다는 특징을 지닌다.
다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 2020년, 리플을 증권으로 등록하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불법적으로 판매했다는 혐의를 적용해 소송을 제기했다. SEC는 리플의 가격이 리플을 발행한 재단 및 제3자의 노력에 따라 수익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는 증권과 비슷한 성격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리플 측은 SEC 주장을 반박하며 리플을 증권이 아닌 가상자산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리플 측은 "SEC가 리플 발행 당시에도 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공정고지법(fair-notice defence)' 위반과 '리플에 투자한 투자자는 판매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투자했다' 등의 이유로 SEC의 주장을 반박했다. 공정고지법 위반이란 사전에 규제 당국으로부터 법적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을 고지받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리플 측은 현행 법규 및 판례로는 해석의 여지가 다양해 자체적인 증권성 판단이 어려웠다고 자신들을 변호해 왔다.
리플 소송이 길어짐에 따라 국내 투자자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투자 현황을 보면 리플은 비트코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투자한 코인이다.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가상자산사업자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리플은 국내 가상자산 시가총액 중 2위(16.7%)를 기록 중이다.
애초엔 리플이 이길 것으로 예측됨에 따라 리플 가격이 급상승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상자산 전문 시황업체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리플은 지난 2월에만 가격이 50% 이상 상승하며, 지난해 저점 대비 100% 이상 올랐으나, 지금은 다시 0.4달러 선으로 움츠러든 상태다. 현재 리플의 가격은 0.45달러 정도로, 3월 말(0.53달러)과 비교했을 때 15% 정도 줄었다.
한 가상자산거래소 관계자는 "리플의 가격이 반짝 상승한 것은 리플이 소송에서 이길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며 "다만 소송이 예상보다 지연되며 기대감 역시 수그러든 상태다"라고 했다.
소송이 길어지고 패소할 가능성도 남아 있자 리플의 발행사 리플랩스는 사업을 미국이 아닌 해외에서 주로 진행하는 방법을 준비 중에 있다. 지난 17일 브래드 갈링하우스 리플랩스 최고경영자는 "미국의 혼란스러운 규제가 기업들로 하여금 해외로 눈을 돌리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리플은 스위스의 디지털 자산 수탁(커스터디) 및 기술 업체인 메타코를 인수하며 해외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또한 리플랩스는 지난 22일에는 중앙은행, 정부 및 금융 기관이 자체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원활하게 발행할 수 있도록 돕는 '리플 CBDC 플랫폼'을 출시하기도 했다. 리플랩스는 해당 플랫폼을 통해 홍콩금융관리국(HKMA)의 첫 디지털 홍콩달러(e-HKD) 시범 프로그램 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리플 소송에 대한 예측을 분분하게 내놓고 있다. 리플이 이기기도 어렵지 않은 상황이나, SEC의 주장도 일리가 있어 판사 재량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최근엔 양측의 극적인 합의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법률사무소 디센트의 홍푸른 대표 변호사는 "만일 리플이 지게 되면 가상자산업계는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미칠 파장이 크기에 법원도 그 결과를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가상자산 전문 분석업체 원더프레임의 김동환 대표는 "업계에서는 미국 법원이 리플 판매 방식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된다고 볼지라도 리플 코인 자체가 증권이 아니라고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라며 "다만 리플이 SEC와 합의에 이르지 못하거나 만일 패소할 경우, 다른 알트코인도 역시 증권성 논란에 시달리거나 심할 경우 무더기로 퇴출당할 수도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