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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중은행이 인수금융사업을 강화하면서 시장 주도권을 잡고 있는 대형 증권사를 위협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는 인수금융 실적 상위 5위 안에 시중은행 4곳이 이름을 올렸다. 최근 몇 년간 증권사들이 인수금융 시장을 사실상 독차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대형 증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로 건전성 악화 위기에 놓인 데다 금리 인상으로 자금 조달 비용마저 상승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2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업용 가스 생산업체 에어퍼스트 소수지분 인수를 추진하는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최근 인수금융 주선사로 KB국민은행과 KDB산업은행, KEB하나은행 등 3곳을 선정했다. KKR은 이들 주선사와 조달 금액과 금리 등 세부적인 내용을 협의 중이다.

보통 인수금융 주선사를 선정할 때 대형 증권사가 포함되는데 이번엔 은행으로만 구성돼 IB업계에서 화제가 됐다. 이번 소수지분(30% 매각 기준)의 매각가는 1조원으로 추산된다.

KKR은 2021년 SK E&S가 발행한 2조4000억원 규모의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인수할 당시에도 국민은행을 단독 주선사로 선정했다.

지난해 인수·합병(M&A) 시장 최대어로 꼽혔던 3D 구강 스캐너업체 메디트 인수전에도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이 3조원 규모의 인수금융 주선을 맡았다. 지난해 10월 SKC(011790) 필름사업부 매각 당시에는 대형 증권사들을 제치고 신한은행이 단독 주선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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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기 인수금융시장 상위 5위 내에서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우리은행, 산업은행 등이 이름을 올렸는데, 5위 내에 증권사는 삼성증권이 유일하다. 지난해 1분기에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016360), KB증권 등이 5위 내에 포진해 있던 것과 대조적이다.

은행들이 인수금융시장에 두각을 보이는 것은 최근 높아진 금리로 증권사들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2020년 3월 미국이 기준금리를 제로금리 수준으로 내리면서 자금조달 비용이 낮아지자 증권사들이 대규모 M&A에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은행들이 높은 신용도를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증권사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하게 됐다. 증권사들은 실적 부진과 부동산 PF 대출 부실이 겹치면서 공격적인 인수금융 영업에 나서기 힘든 상황이다.

IB업계 관계자는 "당분간 국내 M&A 시장의 역성장이 예상되며, 증권사들 역시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은행에 밀려 인수금융시장에서 큰 활약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최근 수년간 인수금융 시장은 대형 증권사가 주도했다. 인수금융시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정책자금 공급과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시중에 돈이 역대급으로 풀리며 호황기를 맞았다. 글로벌 회계법인 PwC에 따르면 2021년 국내에서 사상 최대치인 132조원에 달하는 M&A가 이뤄졌다. 이는 전년 대비 61% 성장한 규모다. 거래건수는 2318건에 달했다.

그러나 미국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조달시장이 얼어붙자, M&A 부문도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1~3분기 국내 증권사의 IB부문 수수료는 전년 대비 7% 증가했으나, 4분기에 급격히 하락하면서 연간으로는 전년과 비교해 6.8% 줄었다. 4분기에만 1~3분기 상승치를 모두 반납하고 역성장한 것이다. IB 수수료에 부동산 PF 관련 수수료가 포함된 점을 고려하더라도 하락세가 가파르다는 지적이 금융권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