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손민균

최근 정부와 금융 당국이 국내 은행에 해외 시장 개척과 수익 구조 다변화를 압박하면서 KB국민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쟁 은행들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각 지역에 네트워크를 만들며 수익을 올리고 있는 반면 KB국민은행은 해외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오히려 뒤처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9일 싱가포르 팬퍼시픽 호텔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6개 국내 금융사 수장들과 공동으로 가진 해외 기업설명회(IR)에서 “디지털 플랫폼 강화와 글로벌 수익 확대에 주력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도약하겠다”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이 전열을 재정비해 부진한 해외 시장 개척에 속도를 내지 못할 경우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성장하겠다는 윤 회장의 목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KB국민은행, 12개국 진출해 현지법인 6곳 운영

15일 금융원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현재 12개 국가에 진출해 총 15곳의 지점과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각 지역에 설립한 자회사 개념인 현지 법인은 중국,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 4개국에서 6곳을 운영 중이다.

KB국민은행과 ‘리딩뱅크’를 두고 경쟁하는 신한은행의 경우 20개국에 지점과 법인을 두고 있다. 특히 현지 법인의 경우 일본과 베트남, 중국 등 아시아는 물론 미국, 유럽, 멕시코 등에도 진출해 현재 10곳이 운영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25개 지역에 진출했고 현지 법인은 11곳을 운영한다. 24개국에 진출한 우리은행도 11곳의 현지 법인을 갖고 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역시 미국과 유럽, 중남미 시장에서 법인을 운영 중이다.

그래픽=손민균

KB국민은행이 중국,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만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 경쟁사인 신한, 하나, 우리은행은 경쟁이 치열하고 높은 수익성을 장담하기 힘든 지역까지 보폭을 넓혀 전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것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해외 실적도 경쟁사보다 부진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주력인 베트남, 일본 등을 중심으로 해외 법인에서 전년 대비 66.2% 급증한 426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우리은행도 같은 기간 65.1% 늘어난 2883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반면 KB국민은행은 인도네시아 등에서 적자 규모가 커지며 5580억원의 손실을 냈다.

◇ ‘카자흐 흑역사’ 이후 해외 개척 주춤

금융 시장 관계자들은 경쟁사보다 한발 앞서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었던 KB국민은행이 현재 뒤처지고 있는 것은 과거 카자흐스탄에서 큰 손실을 본 이후 해외 개척에 소극적인 행보를 이어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KB국민은행은 지난 2008년 카자흐스탄 5위 규모의 금융사였던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의 지분 41.9%를 9541억원에 매입하며 현지 시장에 진출했다. 앞서 2003년 인도네시아 BII은행을 800억원에 인수해 5년 만에 3600억원에 팔아 큰 차익을 거둔 뒤 보폭을 중앙아시아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치면서 주택담보대출과 기업대출이 강점이었던 센터크레디트은행은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결국 KB국민은행은 지난 2017년 9000억원 가까운 손실을 기록한 채 센터크레디트은행을 되팔았다. 카자흐스탄 진출을 진두지휘했던 강정원 당시 행장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KB국민은행은 카자흐스탄 진출에서 실패를 맛본 후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에서 재기를 노렸지만, 지금껏 적자를 보고 있다. 사진은 지난 2020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부코핀은행 본점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KB국민은행과 부코핀은행 경영진들이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KB국민은행 제공

절치부심하던 KB국민은행은 지난 2018년부터 두 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을 인수하며 다시 도전장을 던졌지만, 이마저도 수렁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지난 2021년 2725억원의 손실을 본 KB부코핀은행은 지난해 손실 규모가 8021억원으로 급증했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선제적으로 부실채권(NPL)보다 많은 규모의 충당금을 쌓으면서 손실 규모가 늘었다”고 설명했지만, 금융 시장에서는 KB국민은행이 현지에서 이 은행의 사정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인수를 진행해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 “해외 리테일 강화해 시너지 내야”

다만, 일각에서는 KB국민은행이 해외에서 기업금융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어 법인 확대를 통한 현재 개인고객(리테일) 사업 강화에 주력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기대할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KB국민은행이 직접 운영하는 해외 지점은 뉴욕과 도쿄, 홍콩, 런던, 싱가포르 등에 총 9곳이 있다. 기업금융을 포함한 투자은행(IB) 사업에 주력하는 선진 시장이 중심이다. 주력인 뉴욕 지점은 1990년부터 운영해 지난해 미국 최대 공항인 뉴욕 JFK공항 재개발 사업에 참여하는 등 지금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내고 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법인 설립을 통해 개인고객의 비중을 늘릴 경우 경기침체로 기업금융 사업이 어려움을 겪어도 이자 마진 등으로 이를 방어할 수 있다”며 “최근 정부와 금융 당국도 은행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요구하고 있어, KB 역시 그룹 차원에서 다시 해외 시장 개척에 눈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