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꾸준히 하향세를 탔던 은행 대출 상품의 금리가 다시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의 금리 산정 기준이 되는 은행채의 발행 물량이 최근 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이달 기준금리를 또 인상했기 때문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이날 기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최저 연 3.70%에서 최고 연 5.90%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 14일 기준 3.64~5.82%를 기록한 이후 약 3주 만에 주담대 금리 상·하단이 모두 오른 것이다.
시중은행 주담대 금리는 올해 2월 이후 두 달여간 계속 내림세를 이어왔다. 지난 3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 데다, 대출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는 금융 당국의 압박도 계속됐기 때문이다.
최근 대출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준거 금리로 활용되는 은행채 금리가 올랐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고정형 주택담보대출의 준거 금리가 되는 금융채(은행채) 무보증 신용등급 AAA 기준 5년물 금리는 이날 기준 3.898%를 기록했다. 지난달 14일 3.859%를 기록한 이후 3주 만에 0.04%포인트 상승했다. 신용대출 금리 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는 같은 기간 3.521%에서 3.621%로 0.1%포인트 올랐다.
은행채 금리가 지난달부터 오르고 있는 것은 발행 물량이 최근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채권은 가격이 오르면 금리가 하락하고 반대로 가격이 떨어지면 금리가 상승한다.
국내 은행채 발행 규모는 지난 1월 9조9100억원, 2월 12조1100억원, 3월 1조600억원에서 지난달에는 14조2800억원으로 급증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 발생 후 채권 시장의 유동성 불안이 심화되자 우량채인 은행채 발행 한도를 만기 물량의 100%로 제한했는데, 지난달부터 한도를 125%로 확대하면서 다시 발행 물량이 늘어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요구에 따라 가산금리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금리 인상을 억제하고 있지만, 은행채 금리의 변동에는 인위적으로 손을 대기가 어렵다"며 "은행채 금리가 계속 오르면 주담대, 신용대출 금리 역시 상승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기준금리가 또 오른 점도 은행 대출 금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연준은 3일(현지시각)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기준금리는 5.00~5.25%로 지난 2007년 8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올 들어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3.5%로 동결해 유지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결정에 따라 양 국간 금리 차는 1.75%포인트로 확대됐다. 향후 달러 대비 원화 환율과 외국인 자금 이탈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한은 역시 기준금리를 계속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는 점을 들어 금리가 큰 폭으로 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시카소상품거래소(CME)의 기준금리 예측 프로그램인 페드워치는 연준이 오는 7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0.25% 인하할 가능성을 49.6%로, 동결할 가능성을 49.9%로 각각 점쳤다. 9월에 기준금리 인하 결정이 나올 확률은 49.8%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