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사 전경. /기업은행 제공

금융감독원이 기업은행 횡령사건과 관련한 현장조사를 마쳤다. 감독 당국은 기업은행이 내부통제 시스템을 고도화했음에도 횡령을 막지 못한 데 대해 내부통제 제도의 작동에 허점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횡령사고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가리는 데는 시간이 다소 걸릴 것으로 보인다. 기업은행 자체 감사가 지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체 감사가 늦어지면서 이번 횡령사고에서 나타난 내부통제의 문제점을 보완하지 못해 또 다른 금융사고가 발생할 위험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3일 금융 당국 및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기업은행 횡령사건에 대한 현장조사를 마친 뒤 기업은행의 내부 감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당국 관계자는 "횡령사건과 관련한 현장검사가 끝난 뒤 보고가 이뤄지는 중으로, 아직 내부 심의 절차는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라고 설명했다.

앞서 기업은행은 지난달 외환거래 이상 징후를 인지하고 영업점 직원 A씨가 고객인 국내 기업이 해외로 송금하는 돈을 횡령한 정황을 포착했다. 손실금액은 약 1억9700만원가량으로,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사고금액은 이보다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으로부터 횡령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곧바로 현장검사에 착수했다.

금감원은 현장검사를 마친 뒤 기업은행이 내부통제에서 미흡했던 부분 등에 대해 큰 틀에서의 조사 결과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이번 횡령사고의 원인을 기업은행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했으면 억대 횡령 사건이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업은행 자체적으로도 내부통제가 미흡했던 부분에 대한 확인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차원에서 기업은행은 횡령 당사자 외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직원까지 내부 감사 대상으로 포함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당국 관계자는 "횡령사고가 벌어지면 사고자 외에도 관리·감독의 책임이 있는 사람까지 조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기업은행 관계자는 "내부감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설명은 어렵다"라고 했다.

일러스트=정다운

금융권에서는 기업은행이 지난해 우리은행 횡령사건이 발생한 이후 내부통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조치를 취했음에도 횡령사고가 발생하면서 내부통제의 허점이 있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특히 감독 당국이 최근 내부통제에 대한 임원별 책임 시스템 도입 등 책임경영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내부통제 부실이 드러난다면 담당 임원 등 인적 제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금감원은 이번 사건을 표준처리기간(180일) 내 처리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감독 당국의 계획보다 사건을 마무리하는 데 시간이 좀 더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횡령사건의 내막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퍼즐인 기업은행의 내부 감사가 속도를 내지 못하며 조사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이번 내부 감사를 위해 횡령사건의 당사자인 A씨를 조사해야 하지만, A씨가 심신미약 상태여서 직접 조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선 기업은행이 당사자 조사를 해야 하는데, 현재 당사자가 심신미약인 상태여서 사실상 조사를 못 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귀띔했다.

금감원은 조사를 마친 뒤 내부심사 조정 절차를 거쳐 임직원 제재가 필요하다면, 제재심을 열게 된다. 기관 제재가 있을 시에는 금융위원회 의결 절차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