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후 은행채 금리가 빠르게 내리면서 국내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금리도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조선비즈DB

은행이 장기 대출 등을 위해 발행하는 채권인 은행채의 금리가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을 시작으로 은행들이 잇따라 파산하거나 경영난을 겪으면서 안전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채권 가격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채는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 일반 신용대출 등의 금리를 결정하는데 기준이 된다. 이에 따라 최근 은행채 금리 하락으로 주거비 마련 등을 위해 대출을 받은 사람의 부담이 한층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 ‘주담대 기준’ 은행채 5년물 금리, SVB 파산 후 0.57%포인트 하락

22일 금융투자협회 채권정보센터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금융채(은행채) 무보증 신용등급 AAA 기준 5년물 금리는 3.9%를 기록,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수치까지 떨어졌다. SVB 파산 사태가 불거진 지난 8일 4.473%를 기록한 후 약 보름 만에 금리가 0.573%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은행채 5년물은 고정형 주택담보대출의 준거금리가 된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분할상환방식 주담대 금리는 4.55~5.27%를 기록했다. 이달 은행채 5년물 금리 하락 분이 반영되면 주담대 금리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관측된다.

신용대출 금리 결정의 기준이 되는 은행채 1년물 금리도 같은 기간 눈에 띄게 하락했다. 20일 은행채 1년물 금리는 3.579%를 기록했다. 지난 8일 금리(3.955%)에 비해 0.4%포인트 가까이 떨어진 수치다.

은행채 금리는 지난달 중순 이후 이달 초까지 상승 흐름을 보였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리가 줄곧 오름세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8일 SVB가 파산하면서 채권 금리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에 시그니처은행도 파산을 선언한 데 이어 다른 미국 은행들마저 경영에 적신호가 들어오면서 금융 시장의 자금이 대거 안전자산으로 이동해 채권 가격이 상승하고 반대로 금리는 떨어진 것이다. 채권의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인다.

게다가 최근에는 대표적인 대형 투자은행(IB)이었던 크레디트스위스(CS)마저 경영난을 겪다가 UBS은행에 매각되는 등 글로벌 금융 시장의 불안이 커진 점도 채권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올 들어 은행채 1년물, 5년물 금리 추이/금융투자협회

◇ 美 연준, 3월 베이비스텝 가능성 77%

연준이 애초 공언한 대로 빅스텝을 단행하기 어려워진 점도 은행채 금리가 하락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SVB는 코로나19 사태 기간 예금을 주로 미국 국채에 투자했는데, 연준이 지난해부터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채권 가격이 하락해 큰 손실을 입었다. 다른 은행들 역시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영향으로 보유 자산의 가치가 급락하면서 최근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물론 각국에서 지나치게 빠른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각) 오전 3시 기준으로 미국 시카소상품거래소(CME)의 기준금리 예측 프로그램인 페드워치에서는 오는 21일 열리는 3월 FOMC에서 연준이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베이비스텝’을 결정할 확률이 76.8%로 나타났다. 금리를 동결할 확률도 23.2%에 달했다.

연준이 금리를 동결하거나 소폭 인하하는데 그칠 경우 최근 은행을 겨냥한 금융 당국의 대출금리 인하 요구도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와 금융 당국은 올해 들어 은행들의 과도한 수익 창출과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에 대해 지적하면서, 주담대와 신용대출 등을 포함한 각종 대출금리를 낮추라고 압박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