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학계에서 증권사들의 가상자산 시장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조선비즈DB

최근 일부 증권사들이 규제로 막혀 있는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뜻을 밝혔다. 올해 들어 정치권과 학계 등에서 전통 금융사들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는 가운데 증권업계가 공식적으로 이를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거래소 플랫폼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점유율 88%를 차지하고 있다. 신규 거래소가 출범하고 최근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도 국내 진출을 모색 중이지만, 두나무가 주도하는 시장 구조를 바꾸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오랜 업력을 통해 브랜드 가치가 높고 파생상품 개발과 운용 등에서 검증된 노하우를 갖춘 증권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뛰어들 경우 두나무 독주 체제를 흔들 강력한 ‘메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신한투자 “비증권형 토큰 사업도 하게 해 달라” 포문

신한투자증권은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민의힘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6차 민·당·정 간담회에서 증권형 토큰뿐 아니라 다른 가상자산도 사업 영역에 포함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세일 신한투자증권 블록체인부서장은 “디지털자산기본법에 윤리 의식을 가진 증권사들이 비증권형 토큰 사업에 진출할 수 있는 근거가 포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자산업계와 전통 금융사들은 2년의 기술 격차가 있다”며 “이를 따라잡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전통 금융사에 주어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부서장이 윤리 의식을 언급한 것은 지난해 수십조원의 투자 피해를 낳은 루나·테라 사태와 세계 3대 거래소였던 FTX의 파산 등 가상자산 시장에서 있었던 여러 사고를 꼬집은 것으로 풀이된다. 업력이 짧고 투자자 보호 장치 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가상자산거래소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검증된 증권사가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정부와 금융 당국은 가상자산을 증권형 토큰과 비증권형 토큰으로 나눠 각 사업 주체를 구분하고 있다. STO(Security Token)로 불리는 증권형 토큰은 증권사가 거래를 할 수 있지만, 비증권형은 여전히 두나무와 빗썸 등 기존 가상자산 거래소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시가총액 규모가 크고 거래량이 많은 대형 코인은 비증권형으로 분류된다. 이 때문에 신한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 여러 증권사는 최근 신성장 동력으로 증권형 토큰 사업을 준비하고 있지만, 시장 확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의힘 디지털자산특별위원회가 지난 6일 주최한 제6차 민당정 간담회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뉴스1

◇ 증권사 진출하면 ‘1사 독점 구조’ 깨진다

증권사에 전체 가상자산시장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는 주장은 최근 정치권과 학계에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디지털자산특위가 지난 1월 개최한 신산업·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 연구 보고회에서도 특위 위원들은 현 가상자산 시장의 독점 구조에서 오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통 금융사의 진출이 허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은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지난달 기준 88%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사실상 독점하는 상태다. 2위 플랫폼인 빗썸의 점유율은 한자릿수에 불과하고, 3위 코인원도 5% 안팎에 그친다. 4, 5위인 코빗과 고팍스의 점유율은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

가상자산업계 전문가들은 증권사가 비증권형 토큰 사업까지 다루며 가상자산 시장에 진출할 경우 두나무의 독주 체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업력이 10년도 되지 않은 가상자산거래소에 비해 브랜드 가치가 높아 더 많은 소비자가 이용할 가능성이 크고, 가상자산을 이용한 여러 상품 개발도 가능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대부분의 수익을 현물 코인의 거래 수수료로 얻는데 반해 해외 거래소는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를 통한 수익 비중이 크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는 “현 가상자산 시장의 독점 구조가 지속될 경우 코인의 발행과 상장, 중개, 수수료 등 전반을 하나의 회사가 통제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시장에 더 많은 메기를 푸는 차원에서 증권사의 가상자산 중개 시장 진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나무는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 점유율의 88%를 차지하며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조선비즈DB

◇ 금융 당국은 신중론

다만 금융 당국은 증권사에 비증권형 토큰 사업의 문을 열어주는 문제에 대해 여전히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0월 한 행사에 참석해 “금융사의 가상자산시장 진출은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기존 거래소와의 형평성 문제도 넘어서야 할 과제다. 만약 증권사에 비증권형 토큰 사업을 허용한다면 반대로 증권형 토큰 사업을 하지 못하는 기존 거래소에도 규제를 풀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두나무 등에 새로 증권업 허가를 내줘야 하기 때문에 금융 당국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디지털자산기본법에 증권사의 비증권형 토큰 사업을 허용하는 내용이 담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며 “최근 가상자산시장이 크게 위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증권사도 대규모로 투자를 하는데 대해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