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은현

국내 기업이 올해 경기침체에 대비해 유동성 확보를 서두르고 있지만 자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다. 기업은 위축된 채권시장 대신 은행을 찾고 있는데, 은행권은 기업금융의 문턱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기업의 도산 위험성이 증가하는 시기에 마냥 기업금융을 확대했다가는 건전성에 타격을 입을 수 있어 올해 기업 대출을 보수적으로 취급할 수밖에 없다.

22일 산업은행 산하 KDB미래전략연구소의 2023년 기업금융시장 전망에 따르면 대내외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기업의 은행 대출 수요는 증가세를 유지할 전망이다. 지난해 채권시장 경색으로 회사채 발행을 통해 직접 자금을 조달하지 못한 기업이 은행 대출을 늘려 자금을 융통하던 기조가 올해도 이어지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국내 은행 대출수요지수 추이를 보면 대기업의 경우 지난해 3분기 8이었던 대출수요지수가 4분기 28로 오른 뒤 올해 1분기 19를 기록했다. 중소기업의 대출수요지수 역시 지난해 3분기와 4분기 3을 기록했으나, 올해 1분기 들어서는 14로 껑충 뛰었다. 지수가 높을수록 금융기관 대출 수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찬우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 대출수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경기 둔화에 대비한 유동성 확보 노력, 직접금융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애로 등으로 기업 대출수요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의 대출 수요 증가에도 은행의 대출 증가액은 지난해보다 축소될 전망이다. 다르게 말하면 기업이 돈을 빌리려고 해도 은행의 문턱이 이전보다는 높아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국내 은행의 기업차주에 대한 대출태도는 예대율 규제 완화에 따른 대출 여력 확대, 금융기관 간 경쟁 심화 등으로 올해 1분기 다소 완화됐다. 하지만 기업 재무건전성 악화 등으로 신용위험이 확대됨에 따라 올해 전반적으로는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 관계자는 "기업대출의 부실이 이연되는 부분이 있어 대부분의 은행이 건전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라며 "올해 기업금융 수요가 있지만 무작정 대출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래픽=손민균

특히 이는 중소기업에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은행권이 중소기업의 신용위험이 높아지며 우량기업 위주로 자금을 공급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은행권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와 부채비율 증가로 인한 채무상환 능력 저하를 경계하고 있다. 외감기업의 부채비율은 지난 2021년 말 86.4%에서 지난해 9월 말 92.6%로 높아졌다. 국내 은행의 기업에 대한 신용위험 경계감을 나타내는 신용위험 지수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2021년 하반기 이후 상승 추세에 있다.

기업대출의 연체율이 점차 상승하며 부실이 실재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은행권이 기업대출을 보수적으로 보는 이유다. 만기연장·상환유예 금융지원으로 대출자산 부실화가 아직 표면화되지 않았음에도 기업금융의 부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업대출 연체율은 0.29%로 전월 말 대비 0.03%포인트 높아졌다.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연체율이 0.04%포인트 상승한 0.34%를 기록했다.

기업들은 은행 대출뿐만 아니라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발(發) 채권시장의 경색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데다가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서 회사채 발행 여건이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다.

박 연구위원은 "소비 둔화, 수출 부진 등으로 인한 국내경제의 1%대 성장, 신용위험 상승에 따른 은행권 여신건전성 관리 강화 등을 고려하면 기업대출 증가액은 줄어들 전망이다"라며 "회사채 발행 역시 고금리 기조로 기업 설비투자 감소, 은행 차입 활용 확대 등으로 순발행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