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금리 인상으로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한 은행권이 정부에 미운털이 단단히 박혔다. 국민의 늘어난 이자 부담이 곧 은행의 성과가 되면서 ‘공공의 적’이 돼버린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은행의 돈 잔치로 국민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며 이례적으로 특정 업권을 겨냥한 지시까지 내렸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금리 인하 방안을 내놓은 은행권은 “추가 대책을 마련하겠다”라면서도 “하라는 대로 다 했는데 억울하다”라는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15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은행권의 예대금리차 축소 및 손실흡수능력 확충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먼저 대출금리 모범규준 중 가산금리 항목으로 들어가 있는 예금보험료, 지급준비금을 삭제해 가산금리 자체를 낮춘 데 이어 가산금리 부문에서 개선할 부분이 없는지 들여다볼 예정이다. 지난해 하반기 도입된 예대금리차 공시도 개선점을 살펴본 뒤 고도화할 방침이다.

부실 확대 시 은행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장치도 확대한다.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를 위한 예상손실 전망모형을 개선한 데 이어 특별대손준비금 추가 적립을 요구하는 제도도 올해 상반기 도입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미 발표한 내용 외에도 은행권과 소통해 추가적인 정책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 시내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 /정민하 기자

정부의 이런 움직임에 은행은 금융당국의 뜻에 따라 금리 조정 방안 혹은 사회공헌 확대 등을 추가로 실시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며 표정 관리를 하고 있다. 김광수 은행연합회 회장은 조선비즈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윤 대통령이 금융위원회에 업무지시를 한 상태니, 금융위와 관련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연일 은행권에 비판이 쏟아지는 배경엔 고금리 시기에 이른바 ‘이자 장사’로 배를 불렸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그룹은 지난해 총 16조555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2021년보다 8.99% 증가한 규모다. 특히 이자이익이 호실적을 견인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은행이 막대한 성과급과 희망퇴직금을 남발하고 있다는 게 당국과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와 관련해 금감원은 정기검사를 통해 경영진의 성과급 체계 적정성을 들여다볼 계획을 세웠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임원회의에서 “고금리와 경기둔화 등으로 국민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사상 최대의 이자이익을 바탕으로 거액의 성과급 등을 지급하면서도 국민과 함께 상생하려는 노력은 부족하다는 비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원장은 “성과보수체계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 원칙에 부합하게 운영되고 있는지에 대해 점검을 실시해 은행의 성과평가체계가 단기 수익지표에만 편중되지 않고 미래손실가능성 및 건전성 등 중장기 지표를 충분히 고려토록 하는 등 미흡한 부분은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러스트=손민균

그러나 은행권은 희망퇴직금이나 성과급까지 지적하는 건 민간기업의 보상체계에 간섭하는 지나친 관치라고 반박했다. 이미 금융당국과 정부에서 지시한 사회공헌, 금리 조정까지 협조하고 있는데 억울하다는 얘기다. 은행권 내부 소통 채널에서는 “은행이 공공기관이 돼버렸다”며 “공무원 연금을 받아야 한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중소기업·취약차주 지원, 채권·증권 시장 안정 펀드 자금 투입 등 사회공헌에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면서 “이 부분은 당연하게 보고, 기업 자율인 성과급과 희망퇴직을 지적하니 억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시중은행은 공적 책임은 있을지 몰라도 주식회사 형태의 일반 사기업이다”라면서 “정부가 이런 민간회사를 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금리가 오른 것까지 은행 탓이라는 건 너무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