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금융지주 사옥 전경/뉴스1

국내 금융지주사의 사외이사진이 3월 대폭 교체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은 공공재"라고 강조한 것과 맞물려 새로 선임될 사외이사들은 현 정부의 경제 분야 핵심 인사들로 채워질 전망이다. 이들은 과거의 '거수기' 역할을 벗어나, 각 지주사에 금융의 공익적 역할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14일 금융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주요 금융지주 외에 BNK·DGB·JB 등 지역 금융사들에 재직 중인 59명의 사외이사 중 약 70%에 해당하는 41명의 임기가 오는 3월 만료된다.

보통 금융지주사들은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열어 후보군의 윤곽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임기가 끝나는 이사들의 연임 여부나 새 후보 인선이 결정된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외이사 후보군에는 윤석열 정부의 경제 정책 입안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온 인사들이 다수 포함될 예정이다.

◇ '尹의 경제 복심(腹心)' 인수위 경제1분과 출신 대거 포진 예상

금융지주사들의 사외이사진에는 지난해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서 활동했던 학계, 법조계 인사들이 새로 이름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1분과는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거시·금융·조세정책 전반을 다뤘던 곳이다.

경제1분과 출신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은 박익수 법무법인 김앤장 변호사,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 등이다. 여기에 지난해 말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된 김기영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등도 사외이사 후보로 거론된다.

최근 각 금융지주의 새로운 사외이사 후보군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학계, 법조계 전문가들/조선비즈DB

박익수 변호사는 사시 29회 출신으로 윤 대통령과 서울대 법대 동문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판사를 거쳐 김앤장에 합류한 그는 민간개방형 인사를 통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심결지원2팀장, 협력심판담당관 등을 역임했다.

권남훈 교수 역시 공정거래 분야의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경제학과, 미국 스탠퍼드대 경제학 석·박사 출신의 권 교수는 지난 2020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밀그럼 스탠퍼드대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본업인 교수 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금융위원회·규제개혁위원회·국민경제자문위원회 등 여러 분야에서 정책 자문을 맡고 있다.

김우철 교수는 조세와 재정 분야 전문가로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 과정을 마친 뒤 미국 예일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 사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현금 지원 정책이 국가의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해 주목을 받았다.

주현철 변호사는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제학 학·석사와 국제관계학 석사를 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 로스쿨 과정을 마쳐 미국 변호사 자격을 얻은 인물이다. 기업 인수합병(M&A)과 국제 분쟁 등의 전문가로 인수위 경제1분과에서 유일한 가상자산 담당 위원으로 활동했고, 현재 디지털자산 기본법 입안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1분과 출신 외에 사외이사 후보로 거론되는 김기영 교수는 고려대에서 경영학 학·석·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로스쿨과 보스턴대 대학원 등을 수료했다. 기업회계 분야 전문가로 지난해 11월 국민의힘 당무감사위 부위원장으로 위촉됐다.

◇ 새 사외이사들, 은행 공익적 역할 압박

그동안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경영진의 결정에 순응하고 협조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 대통령과 정부 인사, 금융 당국 수장들이 잇따라 은행의 공익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어, 새로 합류할 사외이사들은 단순한 거수기 정도의 역할에 머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의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은행은 공공재"라고 발언하며, 은행의 공익적 역할을 언급했다. 지난 6일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이 연간 수십조원의 이자 수익을 거두는 것은 과점 체제가 보장되는 특권적 지위의 영향이 있다"며 과실을 나눠야 할 필요성에 대해 강조하기도 했다.

지난해 여러 은행은 대출금리 인상 등을 통해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뒀다.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순이익 합산액은 15조8506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부동산 경기 침체와 대출금리 인상으로 국민의 경제적 고통이 커진 상황에서 은행이 서민의 고통 분담보다 '이자 장사'를 통한 이익 챙기기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난도 거세게 제기되고 있다.

한 금융 시장 관계자는 "최근 금융감독원이 각 금융지주, 은행들의 이사회 운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점도 금융사의 과도한 이익 챙기기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도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새로운 사외이사들이 정부, 금융 당국의 요구에 따라 금융지주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적극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