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규모 2위 업체인 빗썸이 최근 NH농협은행과의 실명계좌 계약 만료를 앞두고 인터넷은행인 카카오뱅크를 새 파트너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가상자산 투자에 관심이 큰 2030세대가 주로 이용하는 카카오뱅크와 맞손을 잡을 경우 새로운 신규 고객을 흡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1일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빗썸은 지난해부터 카카오뱅크와 수 차례 만남을 갖고 실명계좌 발급에 대해 논의해 왔다. 빗썸 관계자는 "NH농협은행과의 실명계좌 발급 계약이 끝나는데 대비해 다른 모든 은행과의 협업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라며 "카카오뱅크도 새로운 파트너로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빗썸이 카카오뱅크와의 협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최근 몇 년 동안 크게 하락한 점유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카카오뱅크는 현재 월간활성이용자(MAU) 수가 1500만명에 이르는 데다, 주 고객 층도 20~30대 젊은 층이다. 따라서 카카오뱅크를 통해 실명계좌를 확보할 경우 이 은행의 이용자 중 상당수를 코인 시장의 신규 투자자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앞서 카카오뱅크와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맺은 거래소 코인원의 경우 최근 신규 투자자 유입이 크게 늘고 있다. 카카오뱅크 원화 입출금 서비스를 시작한 지난해 11월 29일부터 한 달간 코인원의 신규 가입자는 한 달 만에 198.43% 급증했다. 이 가운데 20~30대가 54.4%를 차지했다.
빗썸은 카카오뱅크와의 제휴가 절실한 상황이다. 지난 2018년까지 국내 가상자산 거래량의 60%를 차지하며 1위를 달렸던 빗썸은 이후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에 추월을 당했고 최근 두 업체 간 점유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현재 업비트의 거래 점유율은 70%대에 이르는 반면 빗썸의 점유율은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빗썸은 지난 2017년 회원 개인정보 3만6000여건이 유출돼 고객들의 신뢰를 잃었고, 이듬해에는 190억원 규모의 해킹 사고까지 발생하며 점유율이 크게 하락했다. 이후에는 복잡한 지배 구조 문제와 함께 실소유주로 지목받는 이정훈 전 의장의 사법 리스크까지 불거지며 연이은 타격을 받았다.
실적도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루나-테라 사태와 세계 3위 거래소인 FTX의 파산이 이어져 가상자산 시장이 얼어붙자, 빗썸의 수익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빗썸의 지난해 3분기 매출액은 전년 대비 52.4% 감소한 690억원, 영업이익은 72.8% 줄어든 287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빗썸이 카카오뱅크와의 신규 파트너 계약을 추진하는 것은 NH농협은행과의 계약 연장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의도가 반영됐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 가장자산 업계 관계자는 "NH농협은행은 지난해까지 코인원, 빗썸에 실명계좌를 제공했는데 지금은 두 업체를 모두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며 "빗썸 입장에선 이를 이용해 NH농협은행과 보다 나은 조건으로 협상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카카오뱅크는 빗썸과의 제휴는 물론 협업을 논의 중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도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빗썸 측과 지난해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한 조언을 구한 것이 전부였다"며 "실명계좌 제공과 관련한 논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도 빗썸과 카카오뱅크의 협업이 현실화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카카오뱅크가 코인원과 계약을 맺은 지 얼마 안 된 상황에서 다른 거래소와의 또 제휴를 맺을 경우 다른 은행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한 거래소 관계자는 "금융 당국도 자금 세탁 방지 역량을 제대로 검증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카카오뱅크가 가상자산 업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