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연초부터 금융업권 최고경영자(CEO)와 연쇄 회동을 갖고 있다. 고물가·고금리 등 복합위기 상황에서 금융권의 건전성을 당부하는 한편, 서민금융에 대한 지원을 당부하는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17일 금감원에 따르면 이 원장은 이날 여신금융협회 주관으로 열린 비공개 신년 간담회에 참석해 카드·캐피탈사 CEO 50여명과 만났다.
이 원장은 이 자리에서 소상공인·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금리 상승으로 서민급전 창구 가운데 하나인 여신전문금융사의 대출 축소 움직임이 눈에 띄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사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11월 전월 대비 1조원 줄어들었고, 12월에는 1조6000억원으로 감소 폭을 확대했다.
또, 이 원장은 채권시장의 불안이 한 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금리 상승이 지속되는 상황 속 여전사의 건전성 관리도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원장은 전일 가상자산 관련 토론회에 참석한 뒤 취재진에게 여전협회 간담회에서 논의할 사항으로 “최근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신용공여 축소 문제 등에 대한 지적이 있고, 지난해 화두였던 유동성 이슈가 지금은 많이 정리됐지만 영업 확장이 계속 되다 보면 건전성 이슈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이어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 서호성 케이뱅크 행장, 홍민택 토스뱅크 대표 등 인터넷전문은행 CEO 3명과 이날 오찬 간담회도 가진다. 간담회에서 이 원장은 인터넷은행에 중·저신용자에 대한 대출 확대를 독려할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올해 인터넷은행의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인 30% 이상을 달성할 수 있도록 관심을 당부할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뱅크·케이뱅크·토스뱅크 인터넷은행 3사는 지난해 말 중·저신용자 대출 비중 목표치(25%)를 모두 달성했다.
18일에는 은행장과의 간담회가 예정돼 있다. 이 원장은 은행장에게 예금·대출금리 등에 있어 서민과 금융취약계층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원장은 최근 은행의 예금·대출금리 조정과 관련해 “개별 은행이 (금리) 몇 퍼센트를 올리고 내리는 게 적정한지 이야기하는 건 적절치 않다”면서도 “금리 조정의 방향성, 의사 결정 측면에서 (금융 소비자에 대한) 강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하며 은행권을 향한 금리 조정 압박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권은 금융당국의 주문에 따라 기준금리 상승에도 가산금리 및 우대금리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낮추고, 예금금리도 추가 인상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이 원장은 또한 정책에 은행권의 건의사항을 들어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은 이 자리에서 비금융 진출 지원 등에 대한 의견을 개진할 전망이다.
이 원장은 취임 초부터 소통을 중요하게 여긴 만큼 새해 들어서도 이러한 현장 행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이 원장은 CEO와 회동을 갖거나 연락처를 알려줘 전화나 문자메시지 등으로 적극 현장과의 소통을 해왔다.
한편에서는 이번 간담회가 금융권의 건의보다 당국의 요구 사항을 직접 전달해 금융사를 압박하는 자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장이 취약차주 지원, 중금리 대출 확대 등 당국의 방향을 직접 이야기하는 자리인 만큼 금융사들은 이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