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결제 서비스 업체 다날이 추진 중인 결제형 가상화폐인 페이코인 사업이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금융 당국이 자금 세탁 등에 악용될 수 있다며 올해 안에 실명계좌를 확보하라고 요구했는데, 최근 시중은행과의 논의가 빠르게 진전되지 않아 현실적으로 이를 이행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뉴스1

26일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페이코인 사업 운영자인 다날의 자회사 페이프로토콜은 전북은행과 실명계좌 확보를 위한 협력 방안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은행 측이 페이코인 사업의 잠재 위험성 등을 평가하는 시간이 지체되면서 이번 주 안에 협의를 마치고 페이코인이 실명계좌를 확보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 관계자는 “페이프로토콜이 이용자 보호 방안, 실명계좌 획득 현황 등과 관련해 제출한 자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페이코인은 페이프로토콜이 발행하는 가상화폐다. 페이프로토콜은 페이코인 사업이 허가를 받을 경우 다날이 보유한 15만개의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이 코인을 이용해 물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적용할 계획이었다. 가맹점 점주들은 받은 페이코인을 다시 다날로부터 현금으로 정산받을 수 있는 구조로 돼 있다.

앞서 지난 10월 30일 FIU는 페이코인 측에 연말까지 은행 실명계좌, 가맹점 이용자 보호 방안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오라고 요구했다. 가상화폐인 페이코인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자금 세탁 등에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페이코인은 다날과 자회사들이 코인의 발행부터 유통, 소각, 거래 등을 모두 담당하도록 설계돼 있다. 만약 다날이나 자회사가 페이코인을 매각해 정산하는 과정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매수자가 자금 세탁에 나설 경우 추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금융 당국은 두 달 전부터 페이코인에 반드시 은행을 통한 실명계좌를 확보하라고 요구해 왔다.

현행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서도 가상자산과 원화의 교환을 지원하기 위해선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확보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페이코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페이프로토콜은 26일 페이코인의 물량 일부를 소각했다며 내년 2월까지 전체 발행 물량 40억개 중 21억개를 소각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페이프로토콜 트위터 캡처

페이프로토콜은 페이코인으로 인한 자금 세탁 우려가 제기되자, 여러 보호 장치를 만들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지난달 7일 페이코인 이용자 보호 센터를 만들어 유통계획을 사전 공시하고 회사 소유 지갑의 코인 보유 내역을 실시간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법무법인 태평양과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여러 보호 장치에도 금융위가 기본적인 사업 허가 요건으로 내건 실명계좌 확보가 당초 정한 시한을 넘길 경우 결국 페이코인 사업 자체가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류익선 페이프로토콜 대표는 “시중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등과 관련해 논의를 진행해 왔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며 “연내 실명계좌 확보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금융위에 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다만, 금융 당국이 페이코인의 요청을 받아들여 실명계좌 확보 시한을 연장해 줄지는 미지수다. 지금껏 가상자산 발행사들에 필요한 자료 제출과 요건 확보 시한을 늘려준 전례가 적어 형평성 논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게임제작사인 위메이드가 자체 발행한 가상화폐 위믹스가 유통량을 허위 공시한 문제로 거래소들로부터 상장 폐지 처분을 받은 점도 페이코인에 악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페이코인과 위믹스 코인은 특정 기업이 직접 발행해 유통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특징을 갖고 있다.

FIU 관계자는 “제출 기한을 연장해 주게 되면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크다”며 “아직 페이프로토콜로부터 제출 기한을 연장해 달라는 요청은 들어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만약 요청을 하더라도 형평성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해 연장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