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최고금리가 지난해 20%로 낮춰진 데 이어 15%까지 낮추자는 주장이 정치권에서 제기됐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권 조달금리가 오르는 상황에서 법정 최고금리가 더 하향될 경우 저신용자 250만명이 제도권 금융이 아닌 대부업을 가장한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릴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6일 서울 시내 거리에 떨어진 대출 전단./연합뉴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15일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소비자금융콘퍼런스에서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 3%를 기준으로 법정 최고금리를 15%로 인하할 경우 대부금융 시장에서 12조8000억원(256만명)의 초과 수요가 발생하게 되고, 이들이 결국 불법 사채 시장에 유입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법정 최고금리가 20%로 유지돼도 약 2조원 규모의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대부금융권의 1인당 평균 대출금액이 500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약 40만명이 대출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한다는 게 최 교수의 분석이다.

국회에서는 법정 최고금리가 인하된 지난해 7월 이후 법정 최고금리를 현재 20%에서 12%~15% 수준으로 더 낮춰야 한다는 법안이 5건 발의된 상황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20대 대선 당시 법정 최고금리 15%를 주장한 바 있다. 지난 7월에는 법정 최고금리를 어긴 대출은 계약을 무효로 하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금리가 올라 조달 비용은 커졌는데, 대출금리는 연 20%를 넘을 수 없기 때문에 이미 상한선에 가까운 금리로 대출을 받던 저신용자는 대부금융 시장에서도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많다. 법정 최고금리를 낮춘 것은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이들이 필요한 대출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진 것이다.

최 교수는 “최고 금리를 인하하면 대부금융 시장에서 공급자들의 이탈과 함께 당장 급전이 필요한 수요자들이 제도권 금융에서는 대출받을 수 없는 모순적인 결과가 생긴다”며 “현재와 같은 금리 인상기에 초과수요(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상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소 26.7% 이상으로 최고금리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15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개최한 '13회 소비자금 컨퍼런스'에서 학계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모습./이경탁 기자

실제 최근 대부업계 1·2위 사업자인 러시앤캐시(아프로파이낸셜대부)와 리드코프는 신규대출을 대폭 축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보고서를 발표하고 20%로 법정 최고금리가 고정된 상태에서 향후 조달금리가 지난 6월 말 기준(4.37%)보다 1%포인트 상승할 경우 제도권 대출 시장에서 배제되는 대출자 규모는 97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이 여파로 제도권 대출의 마지막 보루인 대부업체에서도 밀려나 불법 사채 시장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이 증가하는 추세다. 금융 당국은 2018년 최고금리 인하(27.9%→24%) 당시에만 4만~5만명이 불법 사금융으로 유입됐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불법 사금융 신고는 2019년 4986건에서 지난해 9238건으로 급증했고, 올해 들어서도 지난 8월까지 6785건이 접수됐다.

지난 8일에는 부산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신용불량자와 저소득층 등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연 4000%가 넘는 이자를 받은 ‘미등록 대부업(불법 사채업)자’ 66명을 신용정보법, 대부업법, 성폭력특별법 위반으로 붙잡기도 했다. 피해자는 주로 신용불량자와 사회초년생이었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강태수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지난해 정식 대부업금융 이용자가 112만명으로 3년 전과 비교하면 반토막이 났다”면서 “기초생활비가 급하게 필요한 취약계층이 불법 사채업자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데 최고금리 인하가 불법 사금융 시장을 키워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시중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탈, 대부금융 간 금리 격차가 좁아질수록 더 많은 저신용자들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출근길 문답에서 "지금 고금리로 인해 아주 약탈적인 불법 사금융들이 서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며 "정부는 무관용의 원칙으로 강력히 단속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7년간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4만7000여건이었다./연합뉴스

이에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등에서 시행하는 유럽형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는 기준금리 변동 폭만큼 최고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기준금리가 0%일 때 최고금리가 20%라면 기준금리가 3%일 때 최고금리는 23%가 되는 것이다. 이자율을 자율적으로 설정하도록 하되, 폭리 행위에 대해 법원이 제동하는 방식으로 규제한다.

김대규 서울디지털대 법무행정학과 교수는 “법정 최고금리의 급격한 인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했는데 당시 미국, 유럽 등 해외 주요 국가의 정책과 비교해 반대되는 정책이었다”며 “고정 수준의 법정 최고금리규제가 있는 그리스의 경우 유럽에서 불법 사금융이 가장 발전한 나라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정책연구부 연구위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떨어지면서 취약계층의 상황이 더 힘들어질 것”이라며 “최고금리는 시장 경쟁을 통해 이뤄져야 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법정 최고금리가 오르내리는 연동형 법정 최고금리 제도 도입이 최적의 대안이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