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도 '닥터둠(Dr. Doom)'인 줄 알았다. 잊을 만하면 불쑥 튀어나와 비관적으로 경제를 예측하는 경제 전문가들. 1987년 뉴욕 증시 대폭락과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를 예측한 닥터둠의 시조 격인 투자전략가 마크 파버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내다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처럼 그도 '어두운 입'일 거라 생각했다. 나라 안팎에서 경기 침체의 그림자를 조심스레 얘기하고 있는데 '우려'도 아니고 '공포'라니….
한국은행 파견 근무 중인 김효신 금융위원회 서기관이 최근 출간한 'R(recession∙침체)의 공포가 온다'를 통해 한국 경제의 현주소와 위기 가능성을 짚었다. 그는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겪은 8번의 경제위기와 7번의 금융위기 사례에서 나타난 데이터를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위기를 경고했지만, 기회의 가능성도 함께 이야기했다.
-일반인들도 'R의 공포'를 느끼고 있을까?
물가는 치솟고, 뛰는 물가 잡겠다고 금리는 오른다. 자산 가치는 떨어지고 삶은 팍팍해진다. 빌려 쓴 돈에 내야 할 이자는 늘어도 소득은 제자리다. 기업은 어렵다고 고용과 임금을 줄인다. 가계는 쪼들리고 기업은 위축되고. 나와 상관없는 타인 이야기처럼 들렸던 것이 이젠 제법 가까이서 들린다. 경제위기가 소리 없이 속도를 내고 있는 걸까, 이러다 가려져 보이지 않던 위기가 불쑥 눈앞에 닥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건만, 위기를 좀 더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어떨까?
"미국의 경우, 1929년부터 1939년까지 이어졌던 경제위기 때만 해도 이미 수백권의 논문과 책들이 나와서 다양한 분석을 통해 향후 발생할 경제위기에 효율적으로 대응해왔습니다. 특히 최근 경제 현상은 철학이나 정치학, 심리학, 국제관계학 등 인문∙사회 모든 분야와 밀접히 연결돼 있어 위기 상황을 이해하려면 경제적인 이슈 외에 국제 관계나 정치∙외교 구도, 역사까지도 파악해야 하는데, 우리는 경제 하나만 해도 제대로 분석∙정리된 것들이 없어요.
우리도 경제위기의 역사와 교훈을 배워야 앞으로 다가올 불황과 위기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시장에 공포심을 주려는 취지가 아니라, 위기의 역사와 분석을 통해 다가오고 있는 불황과 침체를 헤쳐 나갈 방법을 대중들과 공유하고자 나선 겁니다."
-한국이 겪은 8번의 경제위기와 7번의 금융위기에 나타난 특징은?
"한국의 경제위기는 미국의 금리인상과 맞물려 거의 10년마다 주기적으로 위기가 일어났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겪은 8번의 경제위기 중 7번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관련돼 있습니다. 그리고 7번의 금융위기 가운데 6번은 부동산 거품 붕괴가 일어난 공통점이 있습니다. 부동산은 역동적인 산업 특성상 경기확장과 팽창, 수축 시기에 생성과 확장∙소멸과정을 거치면서 긴축 경기와 맞물릴 때 경제위기를 심화시킨 것으로 나타나죠.
앞서 말했듯, 우리나라 경제는 국제 금융시스템과 연결돼 있어 기축통화국인 미국의 경기침체와 맞물려 위기가 발생합니다. 1950년 6∙25로 빚어진 경제위기를 제외하면, 7번의 경제위기가 모두 미국의 금리인상과 긴축이 시발점이었습니다. 미국의 금리인상 시기에 우리나라의 내부 경제 문제라든지, 투기세력의 움직임, 지정학적 위험, 전염병 같은 천재지변, 정책 실기, 정치∙국제 관계, 미국 월가 전략에 대한 이해 부족 등이 결합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위기가 증폭됐죠.
대표적인 1997년 IMF 외환위기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경우도 모두 미국 금리인상에서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14번의 금리 인상 시기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11번은 극심한 경기침체로 이어졌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통계적으로 30%는 경제위기, 30% 정도는 경기침체로 이어집니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하는데, 정확히 어떤 상황인가?
"일반적으로 2분기 이상 마이너스 성장이 나타날 때 경기침체(recession)라고 합니다. 경기침체가 두세 번 반복되면 불황(depression)이라 하고, 극심한 불황을 경제위기라고 부릅니다. 미국 상황을 먼저 보면, 지난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으니 기술적으로는 경기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공식적인 경기침체는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발표를 해야 하는데 통상 11개월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따라서 미국도 공식적으로 경기침체 상황은 아닙니다.
한국은 2분기 GDP가 전년 동기보다 2.9% 늘어나 숫자상으로는 경기침체가 아닙니다. 지난 통계를 보면 미국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금리를 인상하면 짧게는 17개월에서 길면 3년 정도 이어갑니다. 자산 거품 붕괴는 금리를 조정하고 1~2년 정도 지나 발생합니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평균적으로 30개월 이후 경기침체에 들어갔습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3월부터 진행됐으니, 이제 6개월 조금 더 지난 거죠. 평균적으로 금리인상은 앞으로도 24개월은 더 진행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2024년은 돼야 금리인상도 멎지 않을까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금리 상승과 긴축 시기에는 기축통화국인 국가를 제외하고는 투자금이 빠지면서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자산시장 폭락, 재정적자 확대, 외화 부족의 고통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취약계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죠. 코로나 여파에 사업자 대출로 버틴 자영업자나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로 집을 산 이들의 어려움도 커질 겁니다. 전세자금대출도 마찬가지고요. 주담대나 전세자금대출은 금융채 금리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 금리인상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벌써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6%대에 들어섰고, 고정형은 8%대로 상승했는데, 이게 끝이 아닌 거죠. 최근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과 금융회사 들의 회사채 발행에 문제를 겪는 신용경색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운영에 필요한 기업어음(CP) 발행이 어렵다는 우려가 서서히 커지고 있습니다.
부동산과 관련된 부분도 봐야 합니다. 1900조원에 가까운 가계부채 중 70% 이상이 부동산 대출이거든요. 특히 이 가운데 제2금융권이 떠안고 있는 112조원대의 부동산 PF 대출은 조금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 PF 대출이 많은 일부 보험사는 회사채 발행도 이미 어려워졌거든요. 그간 부동산 경기 활황을 타고 증권, 보험 캐피탈사 등의 부동산 PF 대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대출 연체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위기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의 경우 세계 경제전망의 잣대로 한국의 수출증감을 지표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 숫자가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도 위기의 징표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서고 수출이 준다는 것은 우리나라 주요 수출 1~3위 시장인 중국과 아세안, 미국 시장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죠.
미국의 인플레이션 기조가 너무 강해 2023년 말까지는 금리인상이 이어질 것이고, 금리인상 후에도 상당 부분 고금리 기조가 유지되면 2024년까지 수출이 줄고 경상수지가 나빠지는 상황이 지속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IMF 외환위기 시절처럼 단기외채 비중이 작아 외화가 고갈돼 외환위기로 전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기외채 비중이 1998년 당시는 660%, 2008년에는 72%, 현재는 40% 수준입니다. 외환보유고도 4167억달러에 이르고 600억 규모의 레포 제도나 통화 스와프로 가동할 수 있는 외화도 2000억달러가 넘습니다. 대외 금융자산도 7441억달러에 이릅니다. 또 그간 은행과 금융회사들도 대손충당금과 지급준비금을 꾸준히 확보하고 있어 과거와 같이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은 없을 겁니다."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는?
"금리죠. 가계부채가 1869조원에 이르고 여기에 개인사업자 대출까지 포함하면 2100조원에 이른 상황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직접적인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지난 수년간 가파른 부동산 가격 상승 끝에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로 집을 마련했거나 빚을 내 투자한 사람이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기준금리를 0.5% 올려도 가계와 기업이 추가로 부담해야 할 이자가 12조2000억원이나 됩니다. 이런 기준금리 인상 등의 긴축 시기에는 주식이나 부동산, 채권 등의 자산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산가격 하락은 주식시장에서 먼저 시작돼 부동산 시장으로 확산되고 생산, 소비, 고용 등의 악화로 이어지고, 실업 증가와 임금 인하가 다시 자산가격 하락으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 하락으로 확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게 됩니다.
문제는 미 연준의 금리인상 시기와 폭입니다. 너무 빠른 시간에 큰 폭으로 올리는 게 문제입니다. 미국은 불과 6개월만에 금리를 3% 올렸습니다. 이렇게 급격히 올린 적이 없어요. 2004년에는 2년에 걸쳐 4.25%, 2015년에는 3년간 1.75%를 올렸습니다.
이렇게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는 시기에는 잠재된 문제가 어디에서 드러날지 모릅니다. 최근 영국 사례도 그렇습니다. 영국 신임 총리가 감세하겠다는 발표만으로 영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달러 강세와 국채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도 가장 취약한 곳부터 문제가 터질 수 있습니다.
재무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너무 많은 빚을 내 투자한 개인이나 기업은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죠. 수익 없이 부채를 통해 운영 중인 기업들도 더 이상 자금 융통이 어려워 위기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개인과 기업이 늘면 연체와 부실 증가로 금융회사도 동반 부실로도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제2금융권을 중심으로 하는 금융회사 부도와 기업 신용경색으로 전이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상황입니다."
-위기가 온다면 어떤 형태가 될까? 위기의 시나리오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위기는 대부분 미국의 긴축과 경제위기와 밀접하게 연계돼 있습니다. 미국이 긴축을 시작하면 30%는 극심한 경제위기로 전이되고, 실제 자산붕괴와 경기침체는 금리를 올린 지 1~2년 뒤에 서서히 나타납니다. 미국은 2008년 겪었던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을 많이 참조할 겁니다. 따라서, 당시 자산붕괴로 인해 경제위기로 진행된 기준금리 상한선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기준이 5.25%입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이 금리를 1%에서 5.25%로 인상하자 자산 거품이 빠지면서 경제위기로 전이됐습니다. 5.25%로 금리를 올린 상태가 14개월이 지속되자 결국 부동산 모기지가 붕괴되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옮겨붙은 거죠.
첫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5.25%나 그보다 조금 높은 수준까지 올리는 경우로 잡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자산붕괴와 그에 따른 경제위기 가능성이 있어요. 이럴 경우, 우리나라 기준금리도 미국과 비슷해질 것이고 실질금리는 최소 7%에서 9% 선으로 올라갈 겁니다. 자산가격은 40% 이상 빠지고 가계대출 연체가 늘면서 일부 재무구조가 좋지 않은 금융회사들의 부도와 재무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의 부도도 잇따를 것으로 우려됩니다.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근접한 1500원대 까지 올라갈 가능성도 큽니다. 참고로 2009년 3월 6일 환율이 1년 만에 1597원까지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5.25% 선을 넘지 않고 5%에 근접한 선을 유지할 때입니다. 이럴 경우 인플레이션은 2024년까지 꽤 길게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경기침체는 오지만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9월 인플레이션의 원인은 주거비, 식품, 의료비, 가스 및 상하수도 등 의식주에 필요한 직접 비용이 올라간 것이 원인입니다. 필수 소비재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은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이죠. 이 경우, 환율은 1400원대 후반에서 유지될 것으로 보이고, 부동산 가격은 지금보다 30% 정도 내려갈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되면서 중국의 공급망 마비 문제가 해결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조기 종료돼 가스와 원유 가격이 안정되고 인플레이션도 멈추고 금리도 안정되는 시나리오입니다.
아울러 미국이 금리를 6% 이상으로 올릴 것이냐도 매우 중요한 관전 포인트입니다.
만약 6%이상 올린다면 90년대 중반 발생한 글로벌 경제위기로 전이도 가능할 것입니다. 6% 이상 올리면 외화가 부족하고 재정 상태가 좋지 못한 국가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글로벌 경제위기로 번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국이 1994년부터 1년간 금리를 6% 이상으로 올리자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95년 중남미 경제위기, 97년 아시아, 동유럽,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 등으로 전이된 경험이 있습니다. 미국이 6% 이상으로 금리를 올린다면 세계적으로 극심한 자산 거품이 빠지면서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처럼 환율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경험치로는 있는 거죠."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나요?
"경제위기는 정말 신기하게도 10년 단위로 주기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인생이 좋은 시절과 나쁜 시기가 반복되듯, 경기의 확장과 수축도 주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발생하는 경제위기는 정화효과를 갖고 있어 그간에 갖고 있던 문제점을 개선하고 해결하면 도약의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경기침체나 경제위기가 기존에 갖고 있던 비효율과 비생산적인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것이죠.
지금처럼 기준금리가 인상되는 긴축의 시기에는 기존의 리스크를 분석∙평가하고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개인이면 기존에 갖고 있던 자산, 부채, 투자에 대한 리스크를 관리하고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기업이라면 비생산적이거나 비효율적인 부분을 점검해야 합니다.
타이밍도 중요합니다. 부채를 줄이기 위해서는 자산을 손해 보지 않고 가급적 신속히 조정할 필요도 있습니다. 향후 발생할 수입과 지출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렇게 마련된 현금과 안전자산은 추후 경제가 확장기로 전환되면 가치가 하락한 자산을 재구입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가상화폐도 위기 변수로 꼽았는데…
"가상화폐를 경제위기의 직접적인 변수로 보지는 않습니다. 금융 시스템에 영향을 주는 금융위기의 사례로 본 것이지요. 가상화폐는 우리나라에서 2017년부터 제도적인 검토와 안전망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관련 시장이 먼저 만들어지며 발생한 문제가 우리 금융 시스템에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금융위기의 하나로서 지적한 것입니다.
가상화폐는 지급결제 기능에서 시작해 투자기능이 강화되면서 탈중앙금융을 중심으로 보험, 대출, 자산관리, 투자, 예치, 파생상품 등 가상자산을 이용한 유사 금융상품과 유사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비자 보호와 자금세탁 방지 등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이 먼저 형성됨에 따라, 소비자 피해와 여러 범죄와의 관련성이 증가했습니다. 가상자산 거래에서 시세 조정과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가상화폐도 사전에 소비자 리스크를 검토하고 관련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