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의 은행채 발행이 급증하면서 대출금리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상화되는 건전성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채권 발행을 늘리던 은행권은 최근 레고랜드 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더 적극적으로 채권을 찍어내고 있다.
레고랜드발 디폴트가 채권시장을 냉각시키자 기업들은 채권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려 하고 있다. 이에 은행은 채권 발행을 통해 대출 가능 재원을 마련하는 방법을 택했다. 저원가성예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면서 예금을 기반으로 기업대출을 실행하기 빠듯해진 탓이다. 은행의 기업대출 잔액은 지난달 9조4000억원 증가한 1155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문제는 은행채 발행 확대가 채권 금리까지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채 금리는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지표금리 중 하나로, 가뜩이나 기준금리 상승에 따른 대출금리의 오름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건전성 규제 정상화 속도를 다소 늦추는 등 시장 안정화를 도모해 부동산 PF발 시장 위기가 금융 소비자까지 전가되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20일 금융당국 및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권의 올해 들어 이달 18일까지 은행채 발행액은 167조6690억원으로 작년 연간 발행액인 183조2123억원에 육박했다. 지난달 은행채 발행액은 25조8800억원으로 월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이 추세를 유지한다면 올해 은행채 발행액 규모는 지난해를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채 금리도 급등했다. 은행채(무보증·AAA) 5년물 금리는 전일 기준 5.224%를 기록하며 12년 10개월 만에 5.2%대로 올라섰다. 단기물인 은행채(무보증·AAA) 6개월물의 금리 역시 4.069%로, 13년 9개월 만에 4%를 넘어섰다.
은행채 금리 상승은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출금리는 코픽스(COFIX)나 은행채 금리 등의 지표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우대금리를 빼는 방식으로 산정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채 금리를 기준금리로 쓰는 대출의 경우 금리가 상승할 것"이라며 "채권시장의 수급에 따라 은행채 금리가 조금씩 달라질 수 있으나 은행채 금리가 현재 오르는 추세여서 대출금리도 동반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금융채는 기준금리 상승을 선반영하는 부분이 있어 금리가 상승한 상황"이라며 "은행에서 가산금리를 조정해 은행채 금리 상승분이 대출금리에 전부 반영되지 않더라도 분명 대출금리 상승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일시적으로 완화됐던 건전성 강화 규제인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정상화 움직임도 은행채 발행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LCR은 국제결제은행(BIS)의 유동성비율 규제로, 30일간 순현금유출액 대비 고유동성자산 비율을 의미한다. 금융당국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완화했던 LCR 규제를 단계적으로 강화해 내년 7월 완전 정상화할 예정이었다.
은행은 통상 LCR 규제를 지키기 위해 고유동성 자산을 늘리거나, 순현금유출액을 줄여야 한다. 은행 입장에서는 고유동성 자산을 확보하는 쪽이 수월하다. 그렇기에 은행채 발행을 통해 LCR 관리에 필요한 현금을 늘리려는 것이다. 결국 고유동성 자산을 늘리기 위한 은행권의 은행채 발행은 채권금리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결국 건전성 규제 정상화를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5대 시중은행 자금 담당 임원들과 간담회를 가지고 채권시장 안정화 방안을 논의한 뒤 "은행 LCR 규제 비율 정상화 조치 유예 등 금융회사 유동성 규제의 일부 완화도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당국은 채권시장안정펀드의 여유재원 1조6000억원을 통해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단기채권들을 매입하고, 캐피탈콜(투자자금 일부를 먼저 집행한 후 잔여액수를 수요에 따라 집행하는 방식)도 즉각 준비할 예정이다.
다만 금융당국의 개입에도 채권시장이 쉽사리 진정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채안펀드 재가동을 통한 유동성 공급으로 시장 기능 회복을 기대해 볼 수 있다"면서도 "시장 기능의 완전한 회복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한편, PF 대출 부실 위험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으로 평가받는 은행권은 레고랜드 개발 PF 디폴트 사태 이후 PF 부실에 대한 경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은행의 경우 타 부동산 대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아파트 PF 대출 비중이 약 70%로 높은 편이고, 주로 수도권 위주의 선순위 대출을 취급하고 있어 PF 부실 위험은 크지 않다.
선순위 대출의 경우 목표 분양률 50~60%를 달성할 경우 원금 회수가 가능해 대부분 원금 회수가 가능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PF 부실이 연쇄적으로 이뤄질 경우 또다시 채권 등 전반적인 금융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