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30대 1인 가구 직장인 A씨는 내달 전세 계약 만기를 앞두고 다른 전셋집을 구하지 않고 부모님이 사는 경기도 소재 본가로 들어가 살기로 결정했다. 독립한 지 5년이 넘은 그가 다시 ‘캥거루족’이 되기로 자처한 이유는 2년 새 두 배로 불어난 대출 월 이자액 때문이다.
A씨는 “전세자금대출 금리가 올라 이자가 월 60만원”이라면서 “관리비 등을 감안하면 70만원 이상이 매월 나가는데 현재 월 급여 수준에서는 부담이 큰 편”이라고 했다.
최근 새로운 전셋집을 구한 30대 직장인 B씨는 기존에 살던 집보다 크기를 줄여서 이사했다. B씨는 “대출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가파른 금리 인상 탓에 대출 이자 부담이 나날이 커지고 주택 시장에 불안감이 고조되자, 주거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는 금융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커지는 전세 대출 이자 부담에 월세살이를 택하고, 이사 계획을 포기하거나 집 크기를 줄이고, 부모님과 합가하는 등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차선책을 찾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2일 경기도 수원시의 한 은행에 담보대출 금리 현수막이 게시돼 있는 모습. /뉴스1

더욱 큰 문제는 대출 금리 오름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18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9월 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COFIX)는 2012년 12월(3.09%) 이후 9년 9개월 만에 3%를 넘어섰다. 9월 중 신규취급액기준 코픽스는 3.40%로, 전월보다 0.44%포인트(p) 올랐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시중은행이 예·적금이나 채권으로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 금리다. 코픽스는 은행 변동형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등의 준거금리로 활용된다. 9월말 잔액 기준과 신 잔액 기준 코픽스가 각각 전월보다 0.27%p, 0.25%p 상승해 2.52%, 2.04%를 기록했다.

당장 이날부터 은행들이 코픽스 인상분을 대출 금리에 반영하면서 변동형 주담대와 전세자금대출, 신용대출 금리가 올라 차주의 이자 부담이 증가할 전망이다. 전날 오전 기준 은행권의 전세대출 평균 금리는 최저 3.56%~최고 6.67%다.

2020년 8월 당시 서울에 공급면적 35평형 아파트의 평균 전세 가격이었던 약 5억4000만원을 기준으로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의 80%(4억3000만원)를 당시 금리 2.5%에 대출했다고 가정하면, 월 이자 부담은 89만원이다.

같은 조건에 전세대출 금리를 5.5%로 조정하면 월 상환 이자는 197만원이 된다. 만약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해 전세대출 금리가 7.5%에 이른다면, 월 이자 금액은 270만원까지 커진다.

금리 인상으로 대출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해 부실에 이르는 가구가 늘어날 우려도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말 기준 전세자금보증 가입자 중에서 은행에 전세대출금을 갚지 못해 주택금융공사가 대신 갚게 된 대위변제 금액이 1727억원에 이른다.

세입자 만의 문제도 아니다. 집값을 떠받쳐주던 전세 수요가 줄어들면서, 전세 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들인 소위 ‘갭투자자’들도 자금 여력이 없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실제 최근 시장에서는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는 역전세난이 나타나고 있다. 대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수요가 줄면서 매물이 쌓이고 전세·주택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 10일 기준 전국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은 전주보다 0.25% 하락했다. 서울은 0.22%, 수도권은 0.32%로 하락 폭이 확대됐다. 전세 수요를 나타내는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지난 6월 94.2에서 8월 87.7로 떨어졌다. 반면 전세 대신 월세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월세수급지수는 지난 8월 100.1을 기록하며 올해 처음으로 100을 넘겼다.

전세 가격이 내리면서, 계약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제때 돌려주지 못하는 ‘깡통 전세’ 문제도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금리 인상 정책의 종착점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0.5%p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연내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금리 인상 사이클의 최종 기준금리 수준은 현 기준금리보다 0.5%p 높은 3.5%로 언급하면서도, 금통위 위원 가운데는 3.5%보다 높게 보는 시각도 있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정책과 국내외 물가, 환율, 경기 상황 등에 따라 기준금리 인상 폭과 기간은 달라질 수 있어서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2년 전보다 전세 가격이 올라 대출 부담은 훨씬 큰 상황”이라면서 “금리 인상에 따른 급증한 이자를 부담할 수 있는 가구가 얼마나 있을지가 결국 주택 시장의 전세 가격과 이후 실거래가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