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없이는 살 수 없고, ‘이것’ 만으로도 살 수 없다. ‘이것’ 때문에 울고 웃는 일이 엇갈리고, ‘이것’ 때문에 살고, 또 ‘이것’ 때문에 죽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돈. 모두의 최대 관심이자 가장 갖고 싶은 대상 최우선이 아닐까 싶다. 돈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마력이 있기에 누군가의 인생을 좌우하고, 또 어떤 이에겐 삶의 목적이 되기도 하는 것일까?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인 돈. ‘돈이란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물음에 인문학적 접근을 통해 답을 찾으려는 금융통화 전문가가 있다. 조병익 한국은행 부국장. 그는 최근 ‘돈이란 무엇인가’란 책을 통해 돈과 인간 삶에 대한 복잡 미묘한 함수 관계를 역사와 문학을 인용해 풀어냈다. 책의 내용도 흥미롭지만, 책에 미처 쓰지 못한 그의 생각들이 궁금했다. 올해 초 승진 인사와 더불어 대구경북본부에서 파견 근무 중인 조병익 한국은행 부국장을 만났다.

'돈이란 무엇인가'를 출간한 조병익 한국은행 부국장. /전태훤 선임기자

-돈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던가요?

“책을 쓰긴 했지만, 사실 돈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진 않더군요. 돈이란 것이 사람들의 삶과 다양하게 얽히다 보니, 경험과 생각이 제각각인 사람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돈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적 의미에서 돈은 교환의 매개, 가치 저장, 가치 척도 기능을 가진 일종의 ‘도구’죠. 그리고 수단을 이용해 무엇인가(목적)를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돈을 통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이래서 생기는 것이죠. 돈은 쓰기에 따라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도구입니다. 마치 칼을 의사가 사용하면 사람을 살리는 데 쓰이고, 강도가 사용하면 사람을 해치는 데 쓰이듯, 돈도 그런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법정화폐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면 돈은 일종의 ‘사회적 약속 또는 합의’가 됩니다. 법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가정하더라도 구성원들 간 약속이나 합의만 있으면 뭐든 ‘돈’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 남태평양 야프섬에서 사용되었던 ‘페이(fei)’라는 돌 화폐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법정화폐의 이면에는 ‘약속’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내재돼 있습니다. 정부가 법으로 화폐의 지위를 보장해주는 것은 정부가 언제든지 그 액면만큼 금액을 지급해 주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상거래에서 이뤄지는 매매와 지불도 그런 약속의 이행이죠. 물건을 받고(사고) 그에 합당한 값을 치르고…. 교환의 매개나 가치 척도의 기능이 현대 사회에서는 ‘신뢰와 약속’이란 본질로 발현된다고 봅니다.”

-돈과 행복엔 어떤 함수관계가 있을까요?

“많은 이들이 돈은 곧 행복이고, 돈이 많을수록 행복할 거라 생각하죠. 사실 생존과 욕구 충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돈이 어느 정도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죠. 그런데 돈과 비례해 행복도 커진다는 것은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거 같아요. 돈에도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그리고 돈이 아주 많아진 경우엔 감정의 기준선이 변하면서 행복감이 줄어들 수도 있죠.

또 내가 돈이 많다 해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 행복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흔히 있지요. 행복이라는 감정에는 정신적인 요소들이 더 많이 작용하기 때문에 돈이 행복에 기여하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돈이 일정 부분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은 맞지만, 무한한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즉 행복의 변수로서의 돈의 계수 값이 그리 크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보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조병익 한국은행 부국장이 돈과 행복의 함수 관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전태훤 선임기자

-돈의 한계나 부작용에 대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돈이 많을수록 그만큼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다 보니 돈에 대해 과욕을 부리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돈에 지나치게 매몰되거나, 돈이 삶의 목적이 되거나 돈을 위한 삶을 살게 되면 삶이 추악해지죠. 싸움과 살인, 투기, 도박 등이 그런 결과들이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삶에 미치는 영향이 더 강해지고 확대됐습니다. 쉬운 예로, 놀이공원에서 패스트트랙 서비스와 같이 어떤 서비스를 먼저 이용함으로써 시간을 절약할 수도 있고, 돈을 통해 혈액이나 장기를 사고 팔 수도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과거엔 없었던 일들이죠.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회가 되다 보니, 과거 한 설문에서 한국인의 90% 이상이 ‘돈이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죠.

문제는 돈이 개입되면서 사회적 가치 행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겁니다. 남을 돕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으로 장려돼야 할 가치에 돈이 개입되다 보면 애초의 사회적 가치나 의미가 퇴색하고, 사회적으로 장려돼야 할 것들이 줄어들 수 있다는 거죠. 예컨대 돈을 줘야 위험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사회가 된다면 선뜻 남을 도우려고 나서려는 이들이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겁니다. 돈은 어떤 행동을 유발하는 인센티브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재적 동기를 저하시키는 양면성도 있습니다.

돈이 관여하는 영역이 점점 커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돈에 대한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게 되고, 기본적인 가치마저 돈에 지배당하는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 돈은 어떻게 인간을 지배하게 되는 걸까요?

“돈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감정을 지배합니다. 바로 ‘욕심’이죠. 욕심이란 것이 자연스러운 감정이지만, 지나칠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이죠. 욕심이 지나치면 이성이 마비되면서 중독으로 발전합니다. 중독은 알코올이나 마약, 니코틴 같이 특정 성분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이나 게임, 쇼핑과 같이 특정 행위를 계속 하고 싶은 심리적 이유 때문에 일어나기도 합니다. 돈에 대한 중독은 계속 갖고 싶고, 더 많이 가지려는 일종의 심리적 이유 때문입니다. 이런 중독은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중독 여부를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게 문제죠.

돈 욕심이 지나치게 되면 돈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돈이야말로 나를 위험에서 지켜주는 존재’라는 믿음이 강해지면서 돈이 일종의 물신(物神)으로 등극하는 것이죠.”

일찍이 독일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은 1900년 ‘돈의 철학(Philosophie der Geldes)’이란 저서에서 “돈이 자극하는 감정은 종교적 감정과 심리학적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정신이 돈에 지배당하게 될 경우 돈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돈을 통해 자신의 힘을 표현할 수 있다고 믿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면 돈에 대한 집착과 강박이 생기고, 자신을 발전시키는 기준이 어느새 ‘더 많은 돈’이 되어 버립니다. 더 큰 문제는 자신과 동일시한 돈이 사라져 버리면 자신도 언제든지 함께 무너진다는 거죠.”

-돈이 없는 사회는 가능하고, 돈 없이 살 수 있을까요?

“세상의 악과 범죄가 돈 때문에 발생한다는 생각 때문에 돈이 없어질 경우 세상이 더 좋게 변할 것으로 믿는 이들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생각보다 적지 않습니다. 셰익스피어는 “돈은 독약보다 더 많은 살인을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범죄의 이면에 돈이 자리하고 있다는 인식을 대변해 줍니다. 실제로 많은 문학 작품들은 이상 세계를 묘사하며 돈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그리곤 합니다.

현실에서도 돈을 없애려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19세기 영국의 사회개혁 운동가 로버트 오웬(Robert Owen)을 들 수 있겠네요. 그는 1832년 런던에 ‘노동 중개소’라는 것을 통해 돈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돈을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보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돈이 없어질 경우 우리의 삶은 얼마나 불편해지겠습니까. 물물교환 체제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과연 효율적이고 바람직할까요? 2000년대 중반에 한 캐나다 청년이 물물교환을 통해 종이 클립 하나로 집까지 구하게 된 사례가 있어 화제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집을 얻기까지 무려 1년 동안 14번의 물물교환 과정을 거쳐야 했고, 그 과정에 자신의 모든 일과를 써야하는 기회비용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돈이 없는 사회는 불가능하며, 돈은 자본주의의 궁극적 귀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투기와 투자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사실 투자와 투기를 구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모두 돈을 벌겠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죠. 다만 차이가 있다면 투기는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측면이 있고, 또 실수요보다는 가수요에 기반한 경우가 크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주식이나 금융∙부동산 시장에도 이러한 투자와 투기가 섞여 있는데, 투자나 투기 모두 양가적인 면을 갖고 있어 이 둘을 명확히 구분짓기는 사실 좀 어렵죠.”

혹자는 투기와 투자를 구분하는 기준을 ‘양심’에 두기도 했다. 그만큼 이 둘을 구분하는 기준은 애매하며 객관적 잣대를 들이대기 어렵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조병익 한국은행 부국장 /전태훤 선임기자

-돈이 싫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던데...

“돈과 부자가 싫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돈 자체에 혐오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요. 정말 그들은 돈이 싫어서 그럴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는 돈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 신경학자들은 사람들의 뇌를 촬영해보기도 했는데, 뇌 촬영 장치에 눕힌 후 부유해 보이는 사람의 사진과 빈곤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부유한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은 감정적 신호를 표출한 반면, 빈곤자에 대해서는 싫어하는 신호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이런 실험 결과를 놓고 보면 다수가 돈과 부자를 동경하고 있다는 속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속적 삶과 완전히 단절된 삶을 사는 일부를 제외하면, 겉으로 돈과 부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솔직하지 못하거나, 어쩌면 이중적인 사고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돈과 부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몇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우선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합니다. 인지부조화 이론은 내가 가진 생각이 나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을 때 일종의 심리적 불편을 느끼게 되고, 그 불편을 없애기 위해 남에게 알려진 내 행동을 바꾸기보다 쉽게 바꿀 수 있는 내 마음을 바꿔 심리적 불편을 해소하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이론에 비추어 보면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벌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자신은 ‘아예 처음부터 돈에 관심이 없었고, 원래 돈은 나쁜 것’이라며 본심을 바꾸는 태도를 보입니다. 마치 이솝 우화에서 포도를 먹고 싶었던 여우가 ‘저건 먹어보나 마나 신 포도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세상이 공평해야 한다는 심리도 작용을 합니다. 예를 들어 ‘미인박명’이라는 말처럼 얼굴이 예쁘면 수명이 짧거나 뭔가 부족해야 세상이 공평하다고 믿는 것처럼, 돈이 많다면 최소한 마음씨가 나쁘거나 뭔가 문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쿨레쇼프는 옛 소련의 영화감독이었는데, 그가 관객들에게 한 남자 배우의 얼굴을 보여주고, 이어서 스프가 담긴 그릇, 관 속에 누운 여인, 소파에 누운 여인 사진을 보여줍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관객들은 남자 배우가 무표정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프가 담긴 그릇 사진을 봤을 때는 배가 고파보인다고 말했고, 관속에 누운 여인을 봤을 때는 슬퍼 보인다고 했고, 소파에 누운 여인을 봤을 때는 욕망의 감정을 보인다고 했습니다. 이어진 사진에서 느낀 감정을 남자 배우의 얼굴에 투영해 말한 것이죠. 돈도 중립적일 뿐인데, 뉴스나 소설, 영화 등에서 돈 때문에 발생하는 다툼, 범죄, 살인 등 좋지 않은 사건들과 얽히다 보니, 우리가 돈은 나쁜 것이라는 감정의 연상을 일으켜 돈을 싫어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상화폐가 기존 화폐를 대체하거나 비슷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가 현 화폐를 대체할 것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가상화폐가 공식적인 화폐로 쓰이기는 매우 힘들다고 봅니다. 이는 기본적인 화폐 기능인 교환의 매개, 가치저장, 가치척도 기능에 비추어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 가상화폐가 교환의 매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모든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추어야 하는데, 비트코인만 하더라도 소유구조를 보면 전 세계 0.5퍼센트 정도가 95퍼센트 이상의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있어 범용성을 갖기가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선포한 엘살바도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과 같은 나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비트코인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법정화폐가 정상적으로 사용되는 국가에서 비트코인이 법정화폐로서 지위를 누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