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기업은행(024110) 직원 절반 이상이 최근 열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 총파업에 참여하는 등 노사 갈등이 재점화되고 있다. 희망퇴직 보상 수준을 높이는 것을 골자로 한 노사 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게 직접적인 원인이다. 그런데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정부의 공공기관 관리지침에 벗어난 합의를 무리하게 해준 것에서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8월 1일 오후 서울 중구 기업은행 을지로본점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창립 61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뉴스1

◇ 임피제 직원 7%·희망퇴직 0명… 은행 측 "개선방안 강구 中"

현재 기업은행 노사 문제의 최대 현안은 희망퇴직제 재도입이다. 기업은행은 고령·고임금 근로자 비중이 높은 항아리형 인력구조인데, 2016년 이후 희망퇴직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만 57세부터 적용되는 임금피크제(임피제) 대상자가 많다. 1만3000명 직원 가운데 7%인 1020명에 달한다. 2019년 말(510명) 대비 2배다. 기업은행은 임금피크제 대상자에게 이전 전연봉의 65% 수준을 지급한다.

정부가 2016년 도입한 지침에 따르면 국책은행에서 희망퇴직자을 실시할 경우, 희망퇴직자는 연봉의 45%에 정년까지 남은 근속 연수를 곱해 퇴직금을 지급받는다. 임금피크제를 선택했을 때 지급받는 금액보다 낮다. 임피제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윤 행장이 지난 2020년 취임 당시 노조와 희망퇴직제 재도입을 약속했다는 것이다. 취임 당시 공동 선언문엔 '희망퇴직 문제를 조기에 해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기재부가 제시한 지침 이상으로 퇴직금을 높이는 방식에서다. 기업은행이 국회 정무위원회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희망퇴직 이행 현황에 대해 기업은행 측은 "보상수준 개선을 위해 현재 희망퇴직 개선방안을 지속 강구하고 있으며, 정부와의 논의도 계속 이어 나갈 예정"이라고 답했다.

기업은행의 대주주(지분율 63.7%)인 기획재정부는 올해 이 문제를 놓고 기업은행 제2노조인 시니어노조와 의견 청취 자리를 가졌다. 시니어노조는 50세 이상 시니어직급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설립한 노조다. 이 자리에서 희망퇴직 대상을 임피제 적용 대상인 만 57세 이상으로 하고, 임금피크제 적용 임금에 남은 근속연수를 곱한 금액을 퇴직금으로 받는 방안이 논의됐다. 퇴직 때까지 받을 급여를 미리 선지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방안이다.

2020년 1월 3일 오전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윤종원 신임 IBK기업은행장이 첫 출근 중 노조원들의 출근 저지 투쟁에 가로막혀 노조원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뉴스1

◇ 인병 휴직 확대 등 다른 합의 사항도 현실성 떨어져

희망퇴직제 재도입 이외 다른 노사 합의 사항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것 투성이다. ▲노조 추천 이사제 ▲승진 인사 대폭 확대 ▲인병 휴직(휴가) 확대 ▲임금체계 개편 시 노동조합 허가 ▲임원 선임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 개선 ▲직원 사기 진작책 등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들 항목은 공공기관 특성상 국가에서 정하는 규율을 어길 수 없거나, 인사관리 등 사측의 권한을 일부 포기한 부분"이라면서 "당시 문재인 전(前)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직접 윤 행장 출근 저치 투쟁을 언급할 정도로 논란이 되자, '일단 덮자'는 식으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합의문엔 출근 저지에 나선 노조의 맘을 돌리기 위해 요구사항을 대부분 반영해 윤 행장이 정상 출근을 위해 노조에 백기투항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합의 당시보다 현재 상황이 더 나빠진 경우도 있다. 윤 행장은 시중은행 대비 낮은 임금과 복지를 끌어올리겠다고 했지만, 2019년 말 대비 2021년 말 시중은행 평균 급여 현황과 IBK기업은행 급여 차액은 1680만원에서 2220만원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노조의 요구대로 인사부에서 감찰 기능을 분리했으나, 지난해 주요 시중은행 중 가장 많은 임직원이 사내 윤리강령 위반으로 징계받는 등 부작용을 낳았다.

2020년 1월 13일 서울 중구 을지로 기업은행 본점 정문에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출근을 저지하기 위한 바리케이드와 현수막이 설치돼 있다. /송기영 기자

◇ 끊이지 않는 노사 갈등… 정치권 낙하산 인사 산재도 문제

기업은행은 그동안 노사 갈등에 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기업은행 노조는 2020년 3월 주 52시간 근로제 위반을 이유로 윤 행장을 고발했는데, 이는 금융권에서 최초 사례였다. 당시 기업은행은 올해 내부 경영평가 방식을 개정해 직원들 실적 부담을 덜어주는 방식으로 갈등을 봉합했다.

같은 해 11월엔 노조와 소통을 담당하고 있는 경영지원담당 부행장이 이메일을 통해 노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윤 행장은 비슷한 시기 기업은행 노조가 주최한 개별임금 및 단체협상(임단협) 상견례 자리에도 불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기업은행 측은 "노조 측과 날짜, 장소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이후 윤 행장은 12월 3일 노조와 만나 협의를 진행했다.

기업은행 전반에 정치권 낙하산 인사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이에 윤 행장 후임 역시 노사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정재호 전(前) 국회의원이 IBK기업은행 감사를 맡고 있고, 문명순 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고양갑 지역위원장은 IBK연금저축 상근감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IBK캐피탈은 이낙연 전 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정영주씨가 부사장, 정구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상근감사다.

윤창현 의원은 "노조의 출근저지 투쟁을 무마시킬 임시방편으로 경영권을 포기하거나, 은행장 권한밖의 합의까지 해준 것"이라고 평가하고 "차기 행장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은 결국 직원들을 투쟁으로 내모는 조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