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미국 하와이로 인턴 생활을 하기 위해 떠날 예정인 박모(25)씨는 최근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너무 올라 고민이 크다. 특히 하와이의 물가는 미국에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해 매일 초조하게 환율을 체크하고 있다고 했다. 해외 생활에 따른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여러 금융 상품을 알아보던 박씨는 최근 카드 상품 중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할 경우 미리 약속된 환율로 금액을 결제하는 '고정환율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박씨는 "수십만원 정도만 결제해도 고정 환율로 할인과 비슷한 혜택을 받을 수 있더라"며 "푼돈이라도 아끼며 살아야 할 처지인 만큼 이러한 카드 서비스가 앞으로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급등하면서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할 경우 정해진 고정 환율을 적용하는 신용카드 서비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지난 1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에 대한 환율은 전날보다 5.3원 오른 1399원까지 치솟았다. 1400원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외환당국이 개입에 나서면서 이날 환율은 1388원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강하게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환율은 계속 오를 가능성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달러화 강세, 원화 약세 흐름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카드사들도 환율 동향과 연계된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이와 관련해 카드업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곳은 KB국민카드다.

KB국민카드는 매달 비자, 마스터 등 해외 브랜드 연계 카드의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고정환율서비스'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월별로 기준이 되는 환율을 정해 해외 가맹점에서 결제를 할 때 이 기준보다 환율이 높을 경우 차액은 포인트로 돌려주는 방식이다.

각 사 홈페이지 화면 캡처

지난 1일 진행한 이벤트의 고정환율은 1300원이다. 이용자가 해외에서 원화 기준으로 30만원 이상을 사용할 경우 고정환율이 적용된다. 만약 결제 시점에서 환율이 1300원을 웃돌 경우 차액을 최대 2만포인트까지 받을 수 있다.

예컨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이 1390원 정도인 현 시점에 해외에서 100달러를 주고 물건을 구매할 경우 원화로 13만9000원이 들지만, 이벤트 대상 고객은 9000원을 포인트로 돌려 받게 되는 셈이다.

최근 달러화 가치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입소문을 타고 이 서비스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KB국민카드는 당초 이벤트 신청 기간을 이달 30일까지로 잡았지만, 며칠 만에 목표 인원인 3만명이 몰려 조기에 신청 접수를 마감했다.

다만, 환율 흐름에 따라 매달 적용되는 기준도 계속 올라가는 추세다. 올 7월 KB국민카드의 고정환율서비스 기준은 1250원이었지만, 지난달에는 1280원으로, 이달 들어선 1300원으로 계속 상승했다. 이달 환율 역시 계속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다음달 이벤트의 기준은 1400원 이상으로 정해질 가능성이 있다.

신한카드 역시 달러화 가치가 오르는 시기에 낮은 환율을 적용 받을 수 있는 '해외이용환율'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이 서비스는 환율의 변동을 고려해 이용자가 해외에서 카드를 사용하는 시점의 환율로 금액을 결정하는 것이다. 해외 결제일 환율과 카드사가 청구할 때의 환율이 달라 혼란을 겪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감안해 출시한 서비스다.

해외이용환율 서비스는 특히 지금처럼 달러 가치가 연일 오를 때 이용할 만하다는 평가가 많다. 예로 일반 신용카드는 미국 여행 중 환율 1300원에 물건을 사고 한 달 뒤 카드 사용액 청구 시점에 환율이 1400원이라면 1400원이 적용된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결제 시점인 1300원이 그대로 적용돼 청구 시점이 올 때까지 환율 변화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현재 카드업계에서는 KB국민카드와 신한카드 정도를 제외하고는 아직 환율과 연계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은 곳이 많지 않은 편이다. 아직 제대로 수익성 검증이 되지 않은 데다, 달러화 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지 예측이 쉽지 않아 카드사들이 신상품 개발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러나 앞으로 상당 기간 강달러 흐름이 계속 될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환율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면서 여러 카드사들이 서비스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생겼던 각 국의 출입국 규제가 거의 해제되면서, 해외 여행에 대한 잠재 수요가 크게 늘고 있는 점도 카드사들이 고정환율 서비스 도입에 관심을 가진 이유로 꼽힌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환율 관련 문의가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늘었다"며 "KB국민카드나 신한카드 등 선발 주자들과 차별화 된 환율 관련 상품과 서비스 개발을 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만약 예상치 못하게 달러화 가치가 안정세로 돌아설 경우 소비자들의 관심이 금방 식을 수 있다는 점은 고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