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하반기 세계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온통 잿빛이다. 10년 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경고했던 세계적인 경제 석학들은 다시 '경기 침체론'을 들고 나왔다.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6월 "2년 내에 경기 침체(recession)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닥터 둠'이란 별명을 가진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학교 교수는 "세계 경제가 연착륙(soft landing)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말아라"며 특유의 비관론을 설파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레이 달리오 회장도 "세계는 전쟁의 벼랑 끝에 서 있다"며 비관론 대열에 합류했다.

조선비즈가 인터뷰 한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교수 역시 "이미 걱정만 하고 있을 시간은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이 혼란(disruptions)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시기"라며 세계 경제가 곧 침체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의견에 동의했다.

삭스 교수는 평생 전 세계가 경제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 온 세계적인 석학이다. 경제학계에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와 함께 삭스 교수를 '3대 스타 경제학자'로 꼽는다. 뉴욕타임즈(NYT)는 지속가능개발에 미치는 영향력을 높이 사 그를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학자'로 뽑았다.

그래픽=손민균

1980년대 이후 약 40년 동안 세계 경제를 덮친 대규모 불황은 4차례 있었다. 1980년대 초반과 1990년대 초반, 2001년, 그리고 가장 최근이었던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였다. 전조 현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주요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떨어졌고, 뒤이어 전 세계적으로 무역량이 줄었다. 이후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자본이 빠져나갔다.

삭스 교수는 이런 징후가 올해 초부터 세계 경제 곳곳에서 뚜렷하게 감지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최근 미국·유럽발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전과 같은 신흥국 자본 이탈이 이어질지를 묻자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지정학적 요인이 계속 국제 금융시장을 자극하면 언제든 개발도상국들은 채무 불이행(디폴트·defualt)에 빠질 수 있다'고 답했다.

팬데믹 이후 최근 수년 동안 국제 사회가 빈곤 국가를 포함한 여러 개발도상국에 금융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앞으로 불확실성(uncertainty)이 더 커지면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들이 협력 대신 각자 도생에 나설 것이라는 게 삭스 교수의 예상이다.

다만 한국에 대해선 "금융을 포함한 경제 전체에 걸쳐 효과적인 공공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팬데믹 속에서도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빠르게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삭스 교수는 세계 경제가 다시 살아나려면 지난 6년 내내 이어졌던 미·중 갈등이 어떤 식으로든 봉합되야 한다고 내다봤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여태 동맹국과 결속을 강화해 중국을 거세게 몰아 세웠다. 하지만 올 들어 글로벌 경제가 출렁이면서 이전과는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그는 "이제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 경제에 작용할 핵심 불안 요인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이 갈등을 일단 묻어둬야 한다는 데 공감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음은 삭스 교수와의 일문일답.

지난 2년 동안 전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큰 변수로 꼽혔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멈췄는데도 세계 경제에 대한 비관론이 끊이질 않는다. 이 비관론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가.

"기원(origin)을 따지라면 미국과 중국을 꼽겠다. 두 나라는 지난 수년 동안 세계 경제에서 엔진 역할을 맡았지만, 이 힘이 떨어졌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달러를 대량으로 풀고 정부 재정 지출도 늘리는 통화·재정 확대 정책을 썼다. 그 결과 미국 경제가 기적같이 살아났다. 이 경험 때문에 팬데믹에 같은 식으로 대응했지만, 효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거의 40년 만에 최고치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게 다 푸틴 때문(Putin's price hike)'이라고 했는데,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문제다."

연준이 2019년부터 2022년 사이 3년 동안 발행한 달러가 이전 23년 동안 찍은 액수보다 많다. 현대 통화이론을 추종하는 이들은 화폐공급 권한을 독점한 연준이 완화적인 정책 기조를 바꾸기만 하면 인플레이션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궤도를 벗어난 인플레이션을 잡는 과정이 이들 예상처럼 매끄럽지 않다. 앞으로 3년 동안, 2025년까지는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경기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중국은 다른 국가들보다 코로나19로 인한 대규모 혼란을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다. 서둘러 팬데믹 종료를 선언하려다가 공중 보건 부문에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데 실패해 버렸다. 미국과 관세 문제도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은 국내외 활동에 한계가 분명하다."

세계연합(UN)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대표로서 현재 이 시점에서 세계 경제에 위협적인 요소들을 꼽는다면.

"어느 하나를 꼽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적이다. 금융시장에서는 제로(0)였던 금리가 치솟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장 위협적이다. 그러나 애초에 제로 금리는 영원할 수 없었다. 경기 사이클에 따라 호황 다음에는 불황이 이어진다. 금리는 이런 사이클에 따라 오르내릴 뿐이다.

이보다 지정학적인 불안정성이 더 큰 공포를 자극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세계적인 경제 협력에 큰 균열을 냈다.

뒤따른 미국의 러시아에 대한 전방위적인 제재는 전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그 결과 유럽 국가들과 빈곤국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다. 이 길은 모두가 경제 위기(economic crisis)로 직행하는 길이다.

지금처럼 지정학적인 긴장이 이어지면 언제든 개발 도상국부터 디폴트(defualt)가 이어질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대출 제도나 중앙은행 사이 통화스와프 협약 같은 기존 정책만으로는 대규모 자본 유출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렵다.

"신흥국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아르헨티나나 터키처럼 경제 구조가 대외 충격에 약한 국가들부터 경제 구조가 무너지기 시작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국제 금융 시장은 안전 자산 공급 구조가 기존 선진국 위주로 짜여 있다."

대부분 국가는 개별 국가 단위로 이 비대칭적인 구조를 바꿀 수가 없다. 베네수엘라, 페루, 볼리비아, 칠레처럼 현재 정치가 불안한 국가들은 경제 위기가 발생하면 국가 발행 채권이 더 빠르게 안전 자산 지위를 잃을 것이다.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는 그동안 핵 분쟁이나 기후 변화, 코로나19 같은 전염병과 같은 인류 공통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공통의 원칙(doctrine)을 세우는 데 중점을 뒀다. 그 결과 외교적인 다자주의(multilateralism)를 강화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무역전쟁이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해소되지 않으면 다자주의 대신 지역주의가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픽=손민균

세계적인 금융 정책 흐름이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불러 일으킬 것으로 보나.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 처방을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국 경제를 지켜봤다. 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는 패닉 상태였다.

그러나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가 경제 위기에 빠졌을 때 한국은 금융을 포함한 경제 전반에 걸쳐 효과적인 공공 정책을 가장 먼저 시행했다. 팬데믹 속에서도 한국이 미국이나 유럽보다 빠르게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 안정을 찾았다. 아시아 금융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금융 시스템은 이전보다 훨씬 건전해졌다.

아시아 금융 위기 당시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에서 빠져나갔을 때, 한국은 빠져나간 자금을 메울만한 외환보유고가 없었다. 단기외채 액수도 너무 컸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호주, 일본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경제 시스템에서 주축을 이루는 국가로 자랐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외환보유액은 4000억달러가 넘는다. 경기 침체가 오더라도 이전처럼 신흥국 연쇄 위기에 휘말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경기 침체가 한국이 전 세계 금융계에서 더 주도적인 역할을 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신흥국이나 개발도상국이 경기 침체를 극복하려면 '인적 자본', '기반시설', '사업' 이렇게 세 가지 유형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

한국은 과거 고공 성장을 통해 지속가능한 개발에 대한 정보를 쌓았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디지털 기술, 친환경 에너지 관련 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 정보를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RCEP)'을 맺은 호주와 뉴질랜드,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과 나누면 해당 국가의 채권 차입 조건을 완화해 금융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언제쯤 세계 경제가 비관론에서 벗어나게 될까.

"세계 경제에 당분간 '좋은 소식(good news)'이란 없다.

미 연준이 올해 물가 상승률을 목표치였던 2%로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이전처럼 무한정 돈을 찍어내는 경기 부양책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플레이션이 잡히고, 소비 심리가 살아나려면 2025년은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알다시피 모든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전 인류적인 재앙이라고 여겼던 코로나19 팬데믹조차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였다."

미국은 2014년 이후 우크라이나에 중화기(heavy weapons)를 지원하면서 러시아와 계속 대립했다. 이제 이 도발을 그만둘 적합한 시점이다. 8년을 이어 온 이 방식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러시아는 벌해야 한다'는 미국 정책에 모든 국가가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경제 위기를 이유 삼아 중국과 적대감을 완화하고, 다시 협력 노선을 복구하는 방안을 생각하기에도 좋은 시기다. 바이든 행정부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이전 트럼프 행정부가 부과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징벌적 관세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중국의 공급망을 교란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미국 내 소비자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도 불러 일으켰다.

불필요한 갈등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40년 넘게 두 나라가 조였던 매듭을 느슨하게 할 뿐이다. 반중 동맹(anti-China coalition)처럼 적대적인 행동은 무의미하다. 이제 미국과 중국 모두 자국과 세계 경제에 작용할 핵심 불안 요인을 잠재우는 차원에서라도 이 갈등을 일단 묻어둬야 한다는 데 공감할 것이다.

또 세계 각국은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짜서 경기 침체로 생기는 실업자, 환자, 극빈자, 배고픈 이들을 도와야 한다. 인도주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는 한국을 포함한 유엔 192개 회원국 모두 예외 없이 참석하는 것이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