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카드사들이 잇따라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결제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러 수수료 이익을 늘리기 어려운 데다, 대출 규제 강화로 경영 환경까지 나빠지며 해외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래픽=이은현

4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국내 8곳의 신용카드사 가운데 신한카드와 국민카드·롯데카드·우리카드·BC카드 등 5개 사가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다. 동남아에 진출한 카드사들은 주로 많은 인구와 풍부한 자원을 갖춘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대체 생산 기지로 최근 경제 성장률이 높은 베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에 해당하는 약 2억8000만명의 인구에 원유와 천연가스, 목재 등 자원이 풍부하다. 매년 자원 수출을 통해 5% 이상의 경제 성장률도 보이고 있다. 1억명의 인구를 보유한 베트남 역시 고성장 국가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올해 베트남의 경제 성장률을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높은 8.5%로 전망하기도 했다.

이창원 한국기업평가 금융2실 실장은 “유럽이나 북미 등 선진국은 이미 금융 시스템과 결제 시장이 성숙해 국내 카드사들이 현지 업체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며 “금융 인프라가 아직 부족한 동남아 시장은 지금 당장 수익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지만 향후 높은 성장을 기대할만 하다”고 설명했다.

우리카드는 지난 1일 인도네시아의 할부금융사 ‘바타비야 프로스페린도 파이낸스’를 인수해 ‘우리파이낸스 인도네시아’를 출범시켰다.

우리파이낸스 인도네시아는 우리카드가 지난 2016년 미얀마에 설립한 ‘투투파이낸스’에 이어 두 번째 해외법인이다. 투투파이낸스는 미얀마의 군부 쿠데타 등 악화된 경영 환경에서도 올 상반기 순이익이 지난해보다 약 43% 늘어난 11억1000만원을 기록하며 성과를 내고 있다.

우리카드 관계자는 “인도네시아 법인은 회사의 첫 해외 인수 성공 사례로, 올해 3분기 안으로 공식 출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한카드는 지난달 30일 베트남 법인 ‘신한베트남파이낸스(SVFC)’를 통해 처음으로 신용카드 ‘더 퍼스트(The First)’를 출시했다. 신한카드는 이미 베트남 호치민, 하노이 등에서 신용대출, 오토론(자동차 할부대출) 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베트남 외에 인도네시아, 미얀마 등에서도 해외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해외에서 얻은 당기순이익은 113억30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4배 증가했다.

신한카드가 신한베트남파이낸스(SVFC)의 신용카드 사업 런칭 행사를 국내외 주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트남 호치민에 위치한 쉐라톤(Sheraton) 호텔에서 가졌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임영진 신한카드 사장(왼쪽에서 5번째), 오태준 SVFC 법인장(왼쪽에서 6번째) 등 베트남 현지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신한카드 제공

BC카드도 지난달 12일 인도네시아 IT 개발사 크래니움의 지분 67%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크래니움은 인도네시아 최대 국영은행인 만디리은행을 비롯해 연금저축은행, 텔콤통신사 등 다수 현지 국영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BC카드는 이번 인수로 만다리은행의 차세대시스템 사업과 관련해 크래니움과의 시너지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인도네시아 디지털 결제 국책사업인 해외 QR결제 제휴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BC카드 관계자는 “한국 사업과 마찬가지로 동남아 지역에 진출하는 국내 카드사들의 결제망을 연결하고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동남아에 진출한 KB국민카드는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해외법인에서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8배 성장한 120억91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지난 6월부터는 카카오페이와 손잡고 동남아에서 공동으로 사업 타당성을 검토하고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롯데카드 역시 베트남 롯데파이낸스베트남 법인을 통해 현지 이커머스 업체와 손잡고 하반기 후불결제(BNPL) 서비스 출시를 준비 중이다.

국내 카드 시장의 성장세가 점차 한계를 보이면서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는 카드사는 계속 늘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카드의 경우 지난 2019년 베트남 시장 진출을 준비하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무산된 바 있다. 업계에서는 다른 카드사들의 실적 개선 흐름이 계속될 경우 현대카드가 다시 진출을 모색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에서는 가맹점 수수료가 인하되면서 카드사들이 더 이상 신용판매로 큰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며 “여기에 다른 주요 사업인 카드론 역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대상에 포함돼 성장이 한계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가 다시 회복되더라도 국내에서는 카드사들의 성장 전망이 밝지 않다”며 “동남아 등 해외 시장에 대한 카드사들의 투자가 증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