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를 의료기관이나 제약사 등 산업계에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보험사들은 소비자들의 보험 가입을 제한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국민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 요청을 거부당하고 있다.
31일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에 따르면 건보공단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5222건의 빅데이터를 보건의료분야 연구계와 기관·기업 등 외부에 제공했다. 2014년 77건에 불과했던 빅데이터 제공 건수는 지난해 1166건으로 7년 사이 15배 급증했다.
건보공단은 건강보험 관련 자격, 보험료, 진료내역, 검진결과, 요양기관 자료 등으로 구성된 빅데이터를 구축해 보유하고 있다. 건강보험은 전 국민이 가입한 공공의료보험인 만큼 데이터 활용도가 매우 높다.
특히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데이터 3법 개정으로 보건의료 분야와 산업계 등에서 건강보험 빅데이터 수요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 3법은 가명 처리된 정보를 신용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영리적 목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건보공단은 현재 빅데이터를 외부에 제공하고 있다. 의료계가 연구 목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 제약사, 바이오기업 등에서도 백신, 의료기기 등을 개발하는 데도 쓰이고 있다.
◇ 보험업계, 빅데이터 제공 요청해도 번번이 거부… "악용될 우려"
보험사들도 지난해부터 건강보험 데이터를 상품 개발과 헬스케어 등 신사업에 활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강보험 빅데이터를 건보공단에 요청했다.
그러나 국민건강정보 자료제공심의위원회(심의위)는 삼성생명(032830), 한화생명(088350), 교보생명, 현대해상(001450), KB손해보험이 신청한 데이터 요청 건을 모두 거부했다.
심의위는 시민단체, 의료계, 유관 공공기관, 변호사 등 공단 내·외부 전문가 14인으로 구성됐다. 심의위 안에서는 보험사에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에 대해 의료계뿐 아니라 시민단체, 건보공단 노조 등이 반대 의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보험사에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을 반대한 이유는 보험사가 의료 정보를 활용해 개인의 보험 가입을 제한하는 등 데이터를 악용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이에 한화생명은 심의위가 권고한 과학적 연구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의학계와 함께 연구계획서를 보완해 올해 초 다시 신청을 하기도 했다.
건보공단은 올 상반기 안으로 재신청 건에 대한 결론을 내기로 했지만,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공단이 빅데이터를 보유했다고 해도 외부 제공을 위해서는 독립기구인 심의위를 거쳐야 한다"며 "관련 이해관계자들 간 중재를 하고 합의안을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회의를 하고 있지만 쉽게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 보험업계,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 못 하면 헬스케어 사업 제동
보험업계는 건강보험 빅데이터 활용이 계속 막히게 되면 신성장동력으로 삼은 헬스케어 사업 등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하고 있다.
현재 보험사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데이터는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특정 시점의 단기적 의료 정보를 취합한 심평원 데이터는 개인의 진료 정보와 건강검진 정보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적할 수 있는 건보공단 데이터에 비해 활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건강보험 데이터에는 치료 목적 이외에도 건강 검진을 포함해 지역, 소득 수준 등 다양한 영역의 통계도 포함돼 있다"며 "이는 보험사들이 추진하는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위해 필수적인 자료"라고 설명했다.
정 실장은 "데이터 3법을 통해 기업이 건강보험 데이터를 받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고, 이미 제약사 등은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일부 단체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보험사에만 제공을 거부하는 것은 차별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