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달러화 관련 뉴스를 확인합니다. 그냥 달러 강세가 아니라, 슈퍼 강세라서요. 여기에 원자재 가격 급등까지 겹치니 이중고입니다."

경기도에서 비철금속 가공업을 하는 A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전쟁 같다고 말했다. 달러화 때문이다. 수입 단가가 크게 오르면서 기존 계약 조건으로는 채산성을 맞추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어느 정도 달러 강세를 예측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A씨의 말이다.

경기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한 공장.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조선비즈DB

A씨 공장은 알루미늄 등의 비철금속 가공품을 생산한다. 국내 기업들은 조달청이 매일 고시하는 비축물자 판매 가격을 기준으로 비철금속을 거래한다. 조달청은 환율, 런던금속거래소(LME) 가격, 일본 거래 가격(LME 대비 프리미엄)을 반영해 가격을 결정한다. '환율과 LME 가격 모두 미 달러화 기준'이라 미 달러화 급등으로 직격탄을 맞게 되는 구조인 셈이다. "원가가 뛰면서 기존 납품 단가로는 제품을 공급할 수 없다는 업체들도 여럿 나오고 있다"고 A씨는 귀띔했다.

미국 달러화 초강세 속에서 여러 기업과 가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원자재 가격이 뛴 상황에서, 달러화까지 강세라 외국에서 자재를 들여와 가공하는 제조업체나 완제품을 수입하는 유통업체는 채산성이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해외에 내야 하는 수수료 등 간접비용도 늘어나고 있다.

자녀가 외국에서 유학을 하는 가계 역시 갑자기 지출이 늘었다.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지만, 향후 물가가 더 오르지 않을까 걱정하는 주부들도 여럿이다.

◇ "1200원대로 사업계획 짰는데… 가격 올릴 수밖에 없어"

서울에서 중견 맥주 수입 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출근하면 바로 확인하는 게 환율"이라며 "추석 이후에 제품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B씨는 올해 사업계획을 짜면서 환율을 달러당 1200원 초중반대로 예상하고 사업 계획을 세웠다. "달러화가 강세가 되어도 1200원대 후반 정도로 예상했는데, 1300원을 가볍게 돌파할 줄은 몰랐다"며 B씨는 혀를 내둘렀다. 연초 달러당 1193원50전이던 환율은 지난 29일 한때 1350원을 넘었다.

수입 맥주 등 공산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업체들은 환율 급등에 따른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마트24 제공

맥주 수입업은 송장(인보이스)을 보낸 뒤 1주일 내로 대금 결제를 하는 게 대부분이다. 그렇다 보니 환율 변동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에는 물류만 문제였는데, 이제 국제 곡물 가격에 환율까지 더해서 삼중고"라고 B씨는 토로했다. 그는 또 "유로화가 달러화보다 싸지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유럽산 맥주와 미국산 맥주 가격이 뒤바뀌는 현상도 골치"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완제품을 수입하거나, 수입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은 납품 단가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경남 지역에서 전자제품 포장재를 만드는 C사가 대표적이다. C사 관계자는 "펄프 가격이 뛰면서 원자재 값이 품목별로 20~30% 정도 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포장재를 공급하는 전자제품 회사에 단가 인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환율 급등 탓에 해외 직구 '뚝'… 유학생 가족도 속앓이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늘어나던 해외 온라인 쇼핑몰 직접 구매(해외 직구)도 내리막이다. BC카드 신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올 상반기(1~6월) BC카드 고객들의 해외 직구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4% 줄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결제 건수가 18.3% 급감했다.

아마존 등 해외 온라인 쇼핑몰에서 매입한 물건을 대신 국내로 반입해주는 배송 대행 서비스 매출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배송 대행 서비스 몰테일을 운영하는 코리아센터의 해외 이커머스 관련 매출은 올 상반기 940억원으로 전년 동기(1050억원)와 비교해 10.3% 감소했다.

유학생과 유학생을 둔 가정은 환율 급등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다. 자녀를 미국 대학원에 유학 보낸 D씨는 매월 1500달러를 생활비로 보내주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달러당 1100원대였던 환율이 1300원대로 뛰면서 30만원 가까이 부담이 늘었다. 여기에 물가까지 큰 폭으로 뛰면서 유학생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영국 소도시의 한 대학에 다니는 L씨는 "부모님이 매달 원화로 똑같은 금액을 보내주시는데, 파운드로 찾을 때마다 금액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장 계란밥처럼 싸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버티는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