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주부 A씨는 최근 대출을 알아보던 중, 은행 직원을 사칭하는 한 남성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대출을 받기 위해선 신분증 사진을 보내야 한다”며 A씨에게 사진을 요구했다. 이후 사진을 건네받은 남성은 “모바일 송금 앱인 토스를 사용하면 개인정보 유출이 많으니 앱을 삭제하라”고 말했다.A씨는 토스 앱을 삭제하고 남성이 보낸 링크를 통해 ‘모바일 보안’이란 앱을 설치했다. 그러나 남성의 말투에서 뭔가 의심스럽다고 여긴 A씨는 토스 앱을 다시 설치했다. 그러자 토스 앱에서는 해당 앱이 금융 사기와 관련 있다며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확인 결과 이 남성은 보이스피싱 혐의로 처벌을 받았던 사람이었고, 이번에도 같은 범죄를 시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보이스피싱을 포함한 금융 사기가 기승을 부리면서 토스를 비롯한 핀테크 기업들이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자체 기술을 확보하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15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액은 7744억원을 기록, 4년 전인 2017년의 2470억원에 비해 3배 넘게 증가했다. 보이스피싱 접수 건수는 지난해 기준 3만1681건으로 3년 전에 비해 약 2만건 급증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방식과 기술이 갈수록 진화하자, 간편 결제 전문 기업 토스는 지난 4월부터 앱에 ‘악성 앱 탐지 시스템’을 탑재했다.
이 시스템은 앱을 실행하는 순간 휴대전화 안에 탑재된 다른 앱을 통한 금융 사기 위험 여부를 감지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지난달 말 기준으로 토스가 적발한 위험 감지 건수는 약 40만건에 이른다.
토스는 또 ‘이상거래감지시스템(FDS·Fraud Detection System)’를 운영 중이다. FDS란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사용자가 이용하는 전자기기 정보와 접속 위치 등을 수집·분석해 사기가 의심되는 거래를 차단하는 기술이다. 토스 관계자에 따르면 FDS로 방지한 이상 거래는 지금까지 600건이 넘는다.
이 밖에 토스는 상대방의 계좌가 이전에 사기로 신고된 경우가 있는지 확인하는 ‘사기의심 사이렌’ 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토스 관계자는 “최근 FDS를 이용해 중국 범죄조직이 사기를 통해 얻은 자금 2억2000만원을 송금하는 것을 막았다”며 “자체 보안기술팀 9명을 화이트 해커로 채용해 금융 사기를 방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토스에서 일하는 9명의 화이트 해커들은 모의 해킹 등을 수행하며 금융 사기에 대한 취약점을 파악해 이를 개선하도록 건의하는 임무를 맡는다.
카카오페이(377300) 역시 금융 사기 방지를 위한 자체 FDS를 가동 중이다. 카카오페이는 인공지능(AI)의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적용해 송금이나 결제 패턴 등을 분석하는 방법도 적용하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지난 7월 금융 사기 방지 기업인 ‘더치트’에 지분 투자도 진행했다. 카카오페이는 더치트와 협업을 통해 송금 등을 할 때 사전에 거래 상대방에 대한 사기 이력 여부를 체크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중소 핀테크 업체나 온라인투자연계금융(온투업) 기업 등도 금융 사기 방지를 위한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출 전문 중개 기업인 핀다는 회원 가입을 할 때 이상 여부를 자동으로 탐지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회원 가입 시 비정상적인 시도가 여러 번 발생하면 회원 가입을 자동으로 차단한다.
국내 1호 온투업체인 피플펀드도 올해 2월부터 머신러닝 기술 기반의 AI 금융 사기 탐지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3개월 간의 모델 개발과 검증 테스트를 완료한 후 지난 6월 초부터 실제 적용을 시작했다. 피플펀드는 AI 연구소를 구축해 데이터 분석, 대응 전략 수립 방안에도 나서고 있다.
또 다른 온투업체인 8퍼센트는 사기 감별 시스템 ‘다모(DAMO)’를 개발해 대출 심사에 적용하고 있다. 다모라는 이름은 과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조선 여형사 다모’에서 명칭을 가져왔다. 8퍼센트는 다모를 통해 고객의 활동 정보, 대출 신청 시 특이 사항 등을 고려해 사기 유형을 분석하고 있다.
온투업체 관계자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금융 시장에서 비대면 서비스 비중이 커지면서 덩달아 금융 사기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며 “사기 방지를 위한 기술 확보를 위해 투자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