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2020년을 전후해 빠르게 사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가상자산 가격 급등에 힘입어 순이익이 2019년 120억원에서 2020년 480억원, 2021년 2조2410억원으로 늘어나면서 쌓인 현금을 활용한 행보다.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대체 불가능 토큰(NFT) 등 가상자산과 관련된 사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e스포츠, 연예기획사, 중고 명품 시계 거래 플랫폼 등 가상자산 이외 사업들이다. 카카오, 무신사, 벤처캐피탈(VC) KCA파트너스 등 다른 회사들과 함께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모습도 보인다.
덩치가 커지고 사업범위가 넓어지면서 네이버, 카카오 등의 뒤를 이은 IT발(發) 재벌이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두나무를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했다. 두나무의 자산 총액(10조8200억원)이 기준인 10조원을 넘기면서다. 계열사 간 거래를 이용한 이익 이전에 예민한 대기업 규제가 가상자산 업권 규제에 적용되기 시작한 셈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서 두나무의 주력 계열사들이 금융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가상자산거래소는 금융업이라 보기 어렵지만, 시장 점유율이 80%를 넘는 상황에서 업비트가 중립적인 플랫폼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가상자산 업계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고 있다.
가상자산공개(ICO) 등을 이용해 발행을 통한 자본차익을 거두는 게 일반화된 가상자산업계에서 이해 상충 문제는 계속해서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 일 년 새 자회사 8개→13개… 높은 업비트 의존도에 사업 다각화
두나무가 지난 5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통해 공개한 대규모 기업집단 현황 공시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두나무의 계열사는 총 13개다. 2020년 말 8개였는데, 하나를 정리하고 6개를 설립하거나 인수했다.
2020년 말까지만 해도 두나무 계열사들은 금융투자와 가상자산, 그리고 두 사업을 지원하기 위한 IT서비스 회사들이었다. 두나무투자일임(투자자문업), 두나무파트너스(VC)를 비롯해 지난 2017년 인수한 퓨처위즈(증권용 IT솔루션 개발 및 거래 관련 서비스)와 람다256(블록체인 기술 개발) 등이다.
2020년 들어서면서 두나무 계열사 성격은 판이하게 바뀐다. 대표적인 회사가 2021년 2월 설립된 바이버다. 바이버는 중고 명품 시계 거래 플랫폼 운영사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별도 매장을 갖고 있다. 같은 해 7월에는 여성 아이돌그룹 원더걸스 출신 연예인 김유빈(활동명 유빈)씨가 세운 르엔터테인먼트 지분을 인수했다. 2020년 9월에는 레이싱 분야의 e스포츠 회사인 오토매닉스 지분 85.71%를 취득해 계열사로 편입했다.
다른 회사들과 합작 형태로 다양한 사업 분야에 뛰어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엔터테인먼트 회사 하이브와 손잡고 글로벌 시장을 대상으로 NFT 등 신사업에 나서겠다고 한 것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두나무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하이브 지분 5.57%를 7020억원에 매입했다. 해외 진출을 전담할 계열사 두나무글로벌과 NFT 발행 및 거래 회사 레벨스(Levvels)가 만들어졌다.
두나무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와 함께 한정판 시장에도 진출했다. 두나무는 지난해 한정판 마켓 ‘솔드아웃’의 운영사인 에스엘디티(SLDT)에 10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지난 4월 4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했다.
관계사인 카카오와의 행보도 눈에 띈다. 두나무는 2019년 카카오, KCA파트너스 등과 함께 온라인 종합여행사 타이드스퀘어에 50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진행했다. 지난해 7월엔 카카오게임즈와 우리 글로벌 블록체인투자조합 19호에 각각 20억, 100억원씩 투자했는데, 이 펀드는 두나무의 투자사로 유명한 우리기술투자 주도로 결성됐다.
두나무는 스타트업 투자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두나무는 지난해 두나무투자일임을 통해 신생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크로스로드파트너스와 공동 운용(Co-Gp)하는 257억원 규모의 ‘크로스로드두나무창업벤처전문 PEF’를 결성했다. 해당 펀드는 그로쓰캐피털과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에 투자할 예정이다. 또 두나무는 지난해 12월엔 음악 지식재산권(IP) 투자회사 피엔뮤직제1호 사모투자합자회사에 10억원 규모를 투자했고, 종합 아티스트 IP 플랫폼 원더월을 운영하는 노머스의 시리즈 A·B·C 투자에 모두 참여했다.
부동산 취득도 부쩍 늘었다. 주로 전문 투자 회사의 지분을 취득하는 방식이다. 부동산 분석 및 관리 노하우가 없는 상황에서 빠르게 자산을 사들이기 위한 것이다. 2021년 9월 이지스자산운용의 ‘이지스제303호전문투자형사모부동산투자회사’ 지분 99.88%를 2500억원을 들여 사들였다. 이 특수목적회사(SPC)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길 건너편에 있는 업무용 빌딩 등을 갖고 있다. 또 6월에는 코람코의 ‘코람코더원강남 제1호리츠’ 지분 50%를 인수했다. 이 SPC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에이플러스에셋타워를 4300억원에 사들여 주요 자산으로 삼고 있다.
두나무가 공격적으로 계열사를 늘리는 이유는 업비트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코인광풍이 불던 지난해 말 기준 두나무의 매출은 약 3조7046억에 달했는데, 이 중 업비트 등 거래 플랫폼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99.47%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업비트는 가상자산 시장의 시황에 따라 영업이익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서 “올해처럼 시장 상황이 악화하면, 주 수익원인 수수료가 낮아져 실적에 직격탄을 맞는 불안정한 수익구조로 돼 있다”고 말했다.
◇ 계열사가 코인 리딩방 운영해 논란… 커지는 이해 상충 문제
이렇게 사세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이해 상충 문제도 커지고 있다. 국내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가 주력 계열사인 상황에서, 가상자산과 관계된 사업은 어떤 것이든 이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사업 범위가 넓어질수록 이해 상충 리스크가 높아지는 구조다.
대표적인 사건이 VC 두나무앤파트너스의 가상자산 루나 투자 건이다. 두나무앤파트너스는 2018년 4월 루나를 발행한 테라에 투자하면서 2000만개의 루나를 대가로 받았다. 2021년 3월 이를 전량 장외시장(OTC)에서 매도해 비트코인으로 바꾸었다. 그런데 2019년 4월 업비트가 루나를 상장하고, 루나 시세가 급등했다. 두나무는 당시 상장은 해외 거래소 비트렉스와의 오더북(거래장부) 공유를 통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지난 4월에는 자회사 퓨처위즈가 코인 리딩방(가상자산 투자자문)을 운영하는 회사 트리거를 보유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두나무 측은 “3월에 퓨처위즈가 보유한 지분 40% 중 15%를 매각했고, 4월 15일 나머지 25%도 모두 매각했다”고 해명했지만, 최근까지도 손자 회사가 개인투자자들을 상대로 유사투자자문 행위를 했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특히 퓨처위즈는 두나무의 2대 주주인 김형년 부회장 소유의 회사였다. 김 부회장은 두나무 최대 주주 송치형 의장이 병역특례로 일한 병역특례업체 다날의 사실상의 창업자이기도 하다.
주현철 법무법인 이제 변호사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경우 거래량이 늘어날수록 수수료가 늘어 돈을 벌기에 투자자가 몰리는 리딩방 등을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면서 “앞으로도 이런 이해 상충 논란이 불가피하기에 거래소의 가상자산 투자를 제한하는 등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 어른거리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커지는 규제 리스크
두나무가 다양한 정부 규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먼저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서 계열사 간 거래 등에 제한을 받게 됐다. 특정 회사에 이익을 몰아줄 수 없게 된 것이다. 계열사 인수 등에 따르는 감시도 촘촘해졌다.
가상자산업계는 두나무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될지를 놓고 업계 안팎에서 상당한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여러 의원들은 고승범 당시 금융위원장에게 업비트의 높은 시장 점유율 문제에 대해 질의했다. 그리고 고 전(前) 위원장은 “기존 업체의 영업 방식이 투자자 보호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어 면밀히 검토해 보겠다”고 답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높은 시장 점유율만 가지고 업비트가 과도한 수수료를 취하는 등 시장지배력을 갖고 있다고 볼 근거는 되지 못한다”며 “또 전통적으로 금융업은 공정위 관할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위가 가상자산 거래소를 대상으로 경쟁법을 적용하려고 한다면, 해당 산업이 금융업인지 아니면 비금융 서비스업인지 성격 규정에서부터 진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두나무는 지난해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던 인민호 공정거래위원회 과장을 영입했다. 영입 당시 두나무가 공정위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두나무 설립 초기부터 경영에 영향을 끼쳐온 카카오와의 거리두기도 과제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사업과 업비트와의 협력에서 생길 수 있는 관계사 리스크를 제거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카카오는 두나무 지분을 직접적으론 7.6%, 간접적으론 자회사 케이큐브와 카카오청년창업펀드를 통해 각각 10.18%, 2.5% 보유했다. 카카오가 관계사 지분을 줄이면서 지난해 말 단일 지분 10.88%만 남았지만, 이는 여전히 송 회장(25.7%)과 김형년 부사장(13.2%) 등 창업자들을 제외하고 최대 지분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