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입출금 통장에 넣어둔 돈을 금리가 더 높은 정기 예적금 등으로 옮기는 수요가 늘고 있다. 이 영향으로 보통예금 등 언제든 인출할 수 있는 '요구불예금' 등 은행권의 저원가성 예금 이탈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은행 입장에선 고금리 정기예금 비중 잔고가 늘수록 조달 비용 부담이 늘어난다. 이는 대출 금리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은행권의 저원가성 예금 이탈과 정기예금 금리 경쟁이 비(非)은행, 2금융권의 유동성 위험을 높이는 요소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9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73조3602억원으로, 한 달 새 36조6033억원이 줄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700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다.
최근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증감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 3월에는 전월보다 15조원 규모 늘었고, 4월에는 전월보다 약 8조원가량 감소했다가 5월에는 전월 대비 9296억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은행권에선 이탈한 요구불예금이 금리가 더 높은 정기예금으로 이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 예·적금 잔액은 전달보다 28조원 증가한 750조5658억원이다. 작년 12월 말과 비교하면 7개월 만에 60조원 증가했다.
지난해까지는 정기예금이나 적금에 들어 있던 돈을 수시입출금으로 옮겨두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정기 예·적금 이자가 낮은 데다 언제든지 주식, 부동산 등 투자 명목으로 쓰기 위해 수시입출금에 넣어둔 것이다. 그러다가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은행 관계자는 "요구불예금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는 은행 상품과 타 업권으로 갈아타는 수요가 늘어난 영향"이라고 말했다.
저원가성 예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정기예금이 늘어나면 공급자의 자금 조달 비용이 증가하게 된다. 이는 결국 대출 금리를 올리는 요인이 된다. 돈을 빌리는 차주로선 이자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얘기다. 정기예금 금리 인상으로 은행과 비은행 간 예금금리 격차가 축소되면서, 상호금융, 새마을금고 등 비은행권의 자금 조달 위험 역시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서영수 키움증권 이사는 "은행의 저원가성 예금 이탈과 정기예금 및 시장성 예금의 발행 증가, 은행채 발행 확대는 은행 발 유동성 위기 발생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면서 "은행의 저원가성 예금 이탈이 비은행 및 제2금융권 유동성 부족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요구불예금 잔액 감소에는 계절적 요인도 반영됐을 수 있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지면서 앞으로 은행간 저원가성 예금 유치 경쟁이 치열질 수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순이자마진 상승 폭이 둔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예고한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요구불예금에서 예적금으로 갈아타는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현재 2.25%인 기준금리가 연말에는 2.75~3%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게 시장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내년 경기 침체가 선반영되면서 채권금리가 장기금리를 중심으로 낮아지는 등 현재 예적금 금리가 고점에 이르렀다는 목소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