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을 놓고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제도 실행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은행권은 도덕적 해이와 손실을 이유로 제도 내용의 정비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이를 '제도에 대한 오해'라며 제도 방향성의 수정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금융당국의 간판 정책을 놓고 시중 은행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모양새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는 새출발기금의 세부 운영방안을 이달 중 마련한 뒤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쳐 9월 하순부터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권과 보증기관, 중소벤처기업부, 지방자치단체와 같이 (새출발기금 운영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출발기금은 30조원을 투입해 25만명 규모의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채무를 매입하는 프로그램이다. 기존 대출을 장기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면서 대출금리를 낮춰주고, 연체 90일 이상의 부실 차주에 대해서는 60~90%까지 과감하게 원금을 감면하는 것이 핵심이다.
◇ 은행권 "부실 기준 넓어 도덕적 해이 유도"…금융위 "7년간 불이익 감수할 차주 없어"
은행권은 최근 금융당국의 '소상공인·자영업자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실행 계획안'을 검토한 뒤 과도한 원금감면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캠코 매각 채권(무담보)에 대한 원금감면 비율을 60∼90%로 설정할 경우 부실 차주 양산과 도덕적 해이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어 은행권은 원금감면율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금융위는 이러한 은행의 입장은 "채무조정 프로그램 및 새출발기금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발생한 잘못된 지적"이라고 일갈했다.
금융위는 새출발기금의 기본 구조와 채무조정 원칙은 신용회복위원회의 워크아웃, 법원의 개인회생 등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과 동일하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새출발기금을 통한 원금감면은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이뤄지며, 소득·재산이 충분한 차주는 원금감면을 받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현행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원금감면 한도는 신복위의 경우 0~70%이며, 법원의 개인회생은 별도 제한이 없다. 평균 감면율 역시 신복위는 44~61%, 법원 개인회생 60~66%이다.
새출발기금은 상환능력을 상실해 90일 이상 장기연체를 겪고 있는 금융채무불이행자에 해당하는 차주가 보유한 신용채무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담보가 있는 채무의 경우에는 연체가 90일을 넘어도 원금을 감면하지 않는다.
새출발기금을 이용하더라도 금융채무불이행자 등록으로 인해 신규 대출, 신용카드 이용 등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금융위 관계자는 "7년의 장기간 정상금융거래를 할 수 없음을 고려할 때, 상환능력이 있는 차주가 원금감면을 받기 위해 고의적인 연체를 통해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되고자 할 유인이 거의 없다고 보인다"고 일축했다.
원금감면 수준에 따라 살펴보면 60~80% 수준의 원금감면은 해당 차주가 보유한 재산을 초과한 과잉 부채분에 한해 제한적으로 이뤄진다. 예를 들어 부채가 1억원인 차주가 부동산·동산 등 자산이 1억5000만원어치 있다면 이 차주는 원금감면을 받을 수 없다.
원금감면율 90%의 경우에는 기초생활수급자, 중증장애인, 만 70세 이상의 고령자 등 사실상 원금상환여력이 없는 취약계층에 한해 적용된다는 게 금융위의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새출발기금의 원금감면율을 은행권 주장과 같이 10~50%로 축소할 경우, 이는 코로나 피해로 자금상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해 기존 제도보다 원금감면을 축소하자는 주장으로 수용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의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통한 원금감면 시에는 그 손실을 은행권이 전액 부담하는 반면 새출발기금은 추경을 통해 편성된 재원에서 원금감면 손실을 부담한다"고 강조했다.
◇ 10일 연체해도 연체 이자 감면 논란… 금융위 "확정된 부분 없어"
은행권은 채무조정 대상자의 범위가 너무 넓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이 부실 우려 차주의 기준으로 '금융회사 채무 중 어느 하나의 연체 일수가 10일 이상 90일 미만인 자'를 검토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금융회사의 만기연장·상환유예 거부 차주 ▲6개월 이상 장기 휴업자·폐업자 ▲연체 등에 따른 기한이익상실 차주 ▲세금체납 등 신용정보관리대상 등재 차주 ▲최근 6개월간 5일 이상 연체 횟수 3회 이상인 개인 사업자 ▲개인신용점수 하위 20% 이하인 개인사업자 등이 부실 우려 차주에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이들이 모두 부실 우려 차주에 포함되면 기준이 넓은 탓에 고의 연체를 유인할 수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은 "새출발기금의 적용대상 차주 범위는 현행 금융권 협의를 통해 논의 중인 사항으로 현재 결정된 바 없다"며 "조정금리 수준도 결정된 바 없으며, 새출발기금 시행 당시의 한국자산관리공사의 조달금리 및 시중금리 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은행권 "부실 채권 매각 기준 불만"… 금융위 "금융권 협조 필요"
은행들은 새출발기금을 운영하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에 부실 채권을 매각하는 기준 등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프로그램 대상 차주의 채권을 캠코 외 제3자에게 매각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는 은행 입장에서 보면 채무상환이 가능한 차주의 채권까지 캠코에 낮은 가격에 매각해야 해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은행권은 캠코의 채권 매입 가격이 시장보다 낮은 수준으로 책정되며 '헐값'에 채권을 매각해야 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금융위는 이에 관해 "새출발기금 조정 대상 차주의 채권을 제3자에게 매각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금융회사가 새출발기금 적용 대상 차주의 채권을 새출발기금 협약대상기관이 아닌 제3자에게 매각하는 경우, 해당 차주는 새출발기금 채무조정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위는 "새출발기금 적용 대상 차주에 대해서는 협약으로 금융회사의 제3자에 대한 채권매각을 제한함으로써, 차주들이 채무조정 지원을 받기 전에 대부업 등에 매각돼 채무조정의 기회를 잃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불가피하여 금융권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금융위는 채권 매입 가격에 대해선 "새출발기금은 지역신용보증재단 또는 금융회사 등 참여기관의 저가매각 우려가 없도록 회계법인의 가격결정 공식에 따라 산정된 시장가에 기반해 복수의 기관이 평가한 공정가치(fair value)를 통해 채권을 매입할 예정"이라며 "담보대출의 경우 담보물의 가치 등을 충분히 반영해 매입가격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