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보험업계에서 인슈어테크(InsureTech·보험과 기술의 합성어)를 도입하려는 열기가 뜨거운 가운데 다양한 정보기술(IT)을 무기로 새롭게 진입한 스타트업들은 정작 규제에 발목이 잡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러스트=이은현

◇ 보험업계, 스타트업 등과 협업해 인슈어테크 분야 진출… “디지털 전환 및 편의성 개선 노려”

삼성화재와 동양생명 등 전통 보험사들의 경우 자체 기술을 개발하거나, 핀테크 업체들과 협업하는 형태로 젊은 고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역량 강화에 나서고 있다. 7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국내 대형 보험사들 가운데 인슈어테크 기술을 도입한 곳은 최소 9곳 정도다.

동양생명(082640)은 최근 카카오페이(377300)와 상호업무협약(MOU)을 맺으며 카카오페이 앱을 이용한 보험료 납입 서비스를 시작했다. 외에도 KB손해보험은 스타트업 고고에프엔디와 손잡고 배달 종업원을 위한 보험 보장을 준비 중에 있다.

삼성화재(000810)의 경우는 자체 다이렉트 채널을 앞세우는 등 인슈어테크 분야에 진출 중이다. 삼성화재는 자체 다이렉트 채널 ‘착’을 통해 미니 운전자 보험 등을 출시했다. 미래에셋생명의 경우, 대면으로 진행하던 고객 상담을 화상으로도 가능하게 하는 비대면 창구 라운지를 개설했다.

보험업계가 최근 인슈어테크 역량 강화에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는 보험 상품에 관심이 적은 젊은 세대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또 그 동안 보험 상품 가입과 보험료 납입 등이 불편하다는 지적에 따라 각종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전통 보험업계는 인슈어테크를 활용한 디지털 전환을 통해 침체된 시장에서 새롭게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앞으로 IT 기술에 대한 보험사들의 투자가 계속 늘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마이데이터 인슈어테크 업체는 ‘울상’… 정보 부족 및 여러 규제로 인해 주력 사업 포기하기도

반면 인슈어테크를 통해 보험 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스타트업들은 상황이 다르다. 특히 본인신용관리업(마이데이터) 사업을 준비해 온 여러 업체들은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에 규제에 막혀 ‘진퇴양난’에 빠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마이데이터란 고객의 흩어진 신용 정보를 한데 모아 보여주고 재무현황과 소비 습관을 분석해 금융상품을 추천하는 서비스다. 마이데이터 사업 자격을 취득한 인슈어테크 회사로는 보맵, 해빗팩토리 등이 있다. 이들 업체는 ‘보험 상품 비교 추천’을 주력 사업 모델로 채택하고 있지만, 규제로 인해 해당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러스트=손민균

문제가 된 것은 지난해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과 마이데이터 사업 요건이 충돌한다는 점이다. 금소법에 따르면 금융 플랫폼이 보험 상품 비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선 보험대리점(GA) 자격을 획득해야 한다. 그러나 전자금융업자와 마이데이터 사업자들은 GA 자격 획득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업체는 보맵이다. 마이데이터 사업자 1호인 보맵은 직원 규모가 지난해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보맵의 전 직원 수는 15명으로 지난해 대비(80명) 81.25% 줄었다. 같은 기간 매출 역시 80% 이상 급감했다.

보맵은 한때 영국 리서치 기업 핀테크 글로벌이 선정한 ‘세계 100대 인슈어테크 기업’에 이름을 올렸지만, 지금은 비교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업 규모가 줄어들었다.

마이데이터 정보가 정확하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보맵 등 후발 인슈어테크 업체들은 고객이 들고 있는 보험의 정보를 취합해 가입한 보험 현황 등을 보여주는 것을 주력 사업으로 한다. 그러나 보험사들이 제공하는 데이터 기준이 일정하지 않아 이마저도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당국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보험사들은 특약 정보, 보장 정도 등을 제공하게 돼 있다. 그러나 해석 차이로 몇몇 보험사는 보장 정보만, 어떤 곳은 특약만 제공하고 있다. 특히 계약자와 피보험자가 다른 ‘계피상이’와 같은 보험은 조회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 금융위, 인슈어테크 업체 규제 완화 건의 받았지만 성과는 지지부진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인슈어테크 업체들을 대상으로 규제 샌드박스 신청을 받았다. 그러나 신청 이후 1년이 다 돼가지만, 여전히 규제 해소와 관련해 뚜렷한 성과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금융위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 허가 여부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이해 상충 문제 등 여러 요인들을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나 소비자들에게 효율적인 규제 샌드박스 도입을 위해선 충분한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보험 시장에서 인슈어테크 전문 업체들의 진입 장벽이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미국, 영국 등 보험 선진국들의 경우 진입 장벽이 낮은 대신 불완전 판매 등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며, 금융 당국이 규제 개선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디지털혁신팀장은 “혁신 관점에서 바라보면 경쟁력 있는 다른 업체들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맞다”며 “이후 불완전 판매 등 영업 행위 규제를 더욱 강하게 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국 인슈어테크는 해외와 다르게 보험 판매 등 직접 진출이 어려운 상태”라며 “진입 규제를 지금보다 낮춰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