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에서 처음 발견된 ‘거액 외환 이상(異常)거래’ 의혹이 5대 은행은 물론 IBK기업은행·SC제일은행 등 국내 시중은행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은행들이 부적절한 거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 자금이 불법 자금으로 악용됐다면,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제재가 불가피해 보인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KB국민·NH농협은행 등 대부분 은행에서 우리·신한은행과 비슷한 외환 이상거래 정황이 포착돼 금융감독원(금감원)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5대 시중은행이 아닌 IBK기업은행, SC제일은행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발견됐다. 앞서 금감원은 우리은행의 외환 이상거래를 포착한 이후 다른 은행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는지 자체 점검을 요청했다.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 /뉴스1

금융당국은 규모가 작은 신설법인에 거액의 송금이 이뤄지거나 입금거래가 갑자기 폭등하는 등 통상적인 무역거래에 비해 액수가 지나치게 크거나, 특정 지점에서 갑자기 거래가 늘어난 경우 등을 이상거래로 본다.

금감원은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지점의 외환 이상거래금 중 일부가 가상자산거래소와 관련된 정황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검사를 진행 중이다. 이에 외환 이상거래가 가상자산이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우리은행 지점의 외환 이상거래 규모는 8000여억원 수준이며, 신한은행은 1조원이 넘는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관련 외환 이상거래에 대한 경고를 여러 차례 보내왔다. 금감원은 지난해 4월 시중은행 외환담당 부서장과 비대면 회의를 열고 가상자산 관련 해외 송금에 대한 감시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 그러나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외환 이상거래가 최근 1년간 이뤄졌다는 점을 보면, 은행의 외환 거래 감시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이들 은행의 자금세탁 방지법 및 외환 거래법 위반 여부가 드러날 경우 금융당국의 강력한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5월 하나은행은 2000억원대 규모의 외환 거래법 위반으로 금감원으로부터 과징금 5000만원과 해당 지점의 일부 업무를 4개월 정지당했다. 통상적으로 불법 외환거래의 경우 제재가 과징금 수준에서 그쳤는데, 은행 지점 업무가 일정 정지되는 중징계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조선DB

은행들은 절차상 하자가 없으면 이번 사례와 같은 외환 이상거래를 잡아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은행은 내부에 상시감시반이 있고, 일정 금액 이상의 외환이 거래되는 등 의심사례가 포착되면 이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보고한다. 그러나 의심거래보고(STR)가 제대로 되고, 송금이 여러 차례에 걸려 이뤄진다면 수사기관이 아닌 은행은 거래를 승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이 외환 이상거래를 원천 차단하기는 어려웠을지라도 자금 융통 창구로서 책임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면서 “은행이 외환 이상거래를 확인한 즉시 FIU에 제대로 보고했는지 등 자금세탁방지법이나 외환거래법상 절차적으로 해당 은행 지점 직원이 잘했는지 여부 등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