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험사들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하고 나섰지만, 정작 보험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고객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보험사들의 ESG 활동이 실제로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래픽=이은현

◇ ESG 전담 조직 설립해 친환경·친사회 투자 확대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모든 보험사들은 지난해 금융권 최초로 ‘ESG 경영 선포식’을 개최한 이후 각 회사마다 관련 활동과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먼저 삼성생명(032830)삼성화재(000810)는 지난해 나란히 ESG 위원회를 신설하고, 오는 2030년까지 ESG금융에 각각 20조원, 13조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녹색·상생·투명금융’을 3대 전략으로 수립했다.

한화생명(088350)은 지난 6월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통해 ‘2030 ESG 경영전략 및 로드맵’을 의결했다. 최근 ESG 전략 목표와 경영 성과를 담은 ‘2022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선 ▲환경보호와 친환경 경영 내재화 ▲사회적 책임 실천과 나눔 경영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을 위한 세부 전략 과제를 담았다.

교보생명도 지난 3월 이사회 내 지속가능ESG위원회를 신설했다. ESG 경영 활동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주요 경영진이 참여해 ESG 전략과 주요 추진계획을 수립하는 ESG협의회, ESG 과제 실행을 위해 현업 부서장이 참여하는 ESG실무협의회를 유기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해 2월 23일 국내 보험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ESG 공동 선포식'을 함께 가진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금융위원회 제공

동양생명도 전날 이사회를 열고 이사회 산하 ESG위원회 신설을 결의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친환경 사회공헌활동 등 다양한 업무를 추진해 지속가능한 금융을 실천한다는 목표다.

현대해상(001450)은 지난해까지 ESG 활동에 관한 지속가능보고서와 경영실적 중심의 연차보고서를 구분해 발급했는데, 올해에는 이를 통합한 ‘보험 지속가능한 미래’ 보고서를 처음 발간했다. 친환경·사회가치·지배구조 등 각 부문별 성과와 활동을 구체적으로 기술했다.

DB손해보험(005830), KB손해보험 등 다른 주요 손보사도 ESG위원회를 설치,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넷제로(온실가스 배출량 0) 보험연합’에 가입하는 등 ESG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 소비자 분쟁과 민원은 오히려 증가… 보험 신뢰도, 은행·증권보다 낮아

이처럼 ESG 투자는 확대되고 있지만, 보험사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은 커지고 있다.

손보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손해보험사들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은 총 7850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접수된 6285건 대비 24.9% 증가한 수치다.

아울러 분쟁 중 소송이 제기된 건수도 30건으로, 전년(20건) 대비 50% 급증했다. 손보사들을 대상으로 제기된 민원도 증가세다. 올해 1분기 손보사에 접수된 전체 민원건수는 1만727건으로 전년 동기 9278건 대비 16% 증가했다.

분쟁과 민원이 증가한 원인은 손보사들이 백내장 수술 등 실손보험금 지급 심사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30일 보험사 최고경영자(CEO)와의 상견례 자리에서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소비자의 불만이 증가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앞줄 오른쪽 여섯번째)이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생명보험교육문화센터에서 열린 보험회사 CEO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생명보험도 가입자 수가 계속 줄고 있지만 민원은 오히려 증가 추세다. 생보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종신보험 민원건수는 3468건으로 직전 분기보다 313건 늘었다.

보유계약 10만건당 민원발생 빈도도 증가했다. 올해 1분기 14개 생보사의 보유계약 10만건당 환산건수는 33.3건으로 전년(26.8건) 대비 24.3% 늘었다.

생보사 설계사들이 종신보험을 소비자에게 건강보험·저축성보험으로 오인하게 만들어 파는 등 무리한 허위 영업 관행이 늘었다는 게 보험업계 설명이다.

현재 증가 추세를 감안하면 올해 2분기 보험사들의 분쟁 및 민원은 1분기보다 더 늘어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영향으로 금융권에서 보험사들의 신뢰도가 가장 낮은 상황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사 신뢰도 설문조사 결과 생보사(48.09)나 손보사(48.97)의 신뢰도 점수는 은행(63.08), 증권사(51.21)에 비해 떨어졌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보험사들이 소비자와 고객 보호는 하지 않고 민원을 방치하며 불만을 키우는데 ESG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위선적 행동”이라며 “ESG에 앞서 상품 약관에서 정한 대로 고객에게 보험금을 정당하게 지급하는 것이 먼저”라고 비판했다.

박경서 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은 “ESG에서 S에 포함되는 소비자 보호가 중요한데, 기업들이 ESG의 다른 부분을 통해 이를 세탁하려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업계는 소비자 불만이 계속 늘어왔지만, 보험사들은 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며 “소비자들과의 오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선 법과 제도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