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융사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금산분리를 골자로 한 금융혁신을 추진한다. 금산분리는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이 상대 업종을 소유·지배하는 것을 금지하는 원칙이다.
금융위는 금융과 비금융의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Big-blur) 시대를 맞아 이종산업간 융·복합이 활발한 가운데 금융권만 금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있자 원점에서부터 금산분리 규제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19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1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열고 혁신 과제로 9개 중점과제(36개 세부과제)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는 김 위원장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박병원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명예회장 등 금융업권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금융위가 첫 번째로 추진하는 혁신 과제는 금융과 비금융의 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즉,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뜻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사의 디지털화를 가로막는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는데 대표적으로 금산분리 규제가 있다”고 말했다.
그동안 금융권은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해달라고 요청했다. 현행법상 은행은 비금융회사에 15% 이내 지분투자만 가능하다. 또 부수업무로 인정받거나 규제 샌드박스를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없다.
이에 은행권은 비금융 사업에 진출하기가 어려웠다. A은행은 사용자인터페이스(UI)·사용자경험(UX) 디자인 회사, 부동산 등 생활서비스 업체를 인수하려고 했고, B은행은 중소기업 사업지원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와 영상‧문서 관련 디지털 인식기술 업체를 인수하기를 희망했지만, 금산분리 규제에 가로막혀 이를 할 수 없었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의 자회사 투자범위와 부수업무 범위 확대를 우선 검토할 방침이다. 김 위원장은 “정보통신(IT)·플랫폼 관련 영업과 신기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업무 범위와 자회사 투자 제한을 개선하는 방안을 우선 검토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세부적으로는 현행 금융회사가 자회사 투자를 허용할 때 금융업종 관련성 외에 효율성 기준 등을 신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의 비금융 신사업 진출의 장벽이 무너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순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융회사의 자회사 투자 허용 기준으로서 현행 금융업종 관련성 외에 효율성 기준 등을 신규 도입할 필요가 있는지, 현행 출자총액한도 등 위험관리 규제가 충분한지 등을 검토해 나가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금융회사의 부수업무 범위를 현행과 같이 고유업무와 유사한 업무로 한정함이 바람직한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업무 허용 기준으로서 효율성 기준 추가 및 부수업무로 인한 위험총량 통제 장치 도입 여부 등을 중점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산분리 규제 중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하는 부분은 빅테크의 은행업 진출에 따른 리스크 등을 고려해 장기과제로 추진할 예정이다.
금융위는 또한 전업주의 규제 합리화 측면에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금융상품 중개 서비스를 시범 운영하여 검증하는 한편, 금융회사들이 금융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방침이다. 이를 위해 업무위탁, 실명확인, 보험모집 규제 등의 개선을 통해 외부자원 및 디지털 신기술 활용을 활성화할 예정이다.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 온라인 예금·보험 중개플랫폼 등 다양한 사업모델이 가능한 유연한 규제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가상자산, 조각투자 등 디지털 신산업의 책임 있는 성장을 유도하기 위한 균형 잡힌 규율체계도 정비할 계획이다.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서 신탁 제도 개선, 대체거래소(ATS) 도입 등을 통해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경쟁을 촉진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까지 분과별 회의를 열어 작업계획을 확정하고, 과제별 검토를 진행한다. 제2차 금융규제혁신회의도 다음 달 열고 혁신과제를 속도감 있게 처리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금융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어떠한 고정관념에도 권위를 부여하지 않고 근본부터 의심해 금융규제의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