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해 지원사격에 나선다. 앞서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합병이 해외 기업결합 승인 기관에 가로막혀 무산되자 ‘제2의 합병 무산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이번 국적 항공사 통합에 사활을 걸고 지원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심사를 진행 중인 해외 기관에 이번 기업결합의 추진 배경 및 필요성 등을 설명하는 자료 제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나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 지연과 관련해 산업은행이 경쟁제한 완화와 관련한 방안을 외국 경쟁 당국에 적극적으로 개진해달라”는 요청에 따라 산업은행이 기업결합을 심사 중인 해외 기관을 설득할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번 보고에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의 외국 경쟁당국 앞 자료 대응 및 시정방안 협의를 적극 독려하는 한편, 산업·외교 등의 측면에서 관계부처의 적극적 지원을 요청하는 등 기업결합승인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계 각국은 경쟁당국을 통해 기업 인수합병(M&A)을 심사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그 역할을 한다.
현재 유럽연합(EU), 미국, 중국, 일본, 영국, 호주 등 6개 경쟁당국에서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국을 포함해 터키, 대만, 태국, 베트남,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서는 이미 이번 기업결합에 대해 승인 결정을 내렸다.
기업결합신고 주체가 대한항공인 만큼 이번 국적 항공사 합병에 있어 산업은행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는 어렵지만, 산업은행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업은행은 정부 차원의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 주EU 대사와 면담을 하고 관계부처 앞 수시로 심사 진행상황을 보고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에 적극적인 취하는 데는 3년 가까이 추진돼 온 국내 조선사 간 기업결합이 EU 기업결합 심사 기관의 반대로 무산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M&A 불발로 국내 조선산업의 재편이 원점으로 돌아간 것처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이 무산될 시 국내 항공산업도 새롭게 판을 짜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당시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이에 대해 EU의 ‘자국이기주의’가 드러난 결과라고 맹비난했다. 이 전 회장은 “EU는 최근 유럽 내 에너지공급 불안 상황, LNG선 가격 인상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기업결합을) 불승인한 것 같다”며 “EU 소비자, 즉 선주들 측면에선 국내 조선 3사가 경쟁하니 배값이 싸지는 등 기존 구조를 유지하고 싶은 철저한 자국 이기주의에 근거한 결정이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정한 판단이라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결과가 실패로 돌아간 것에 대해 죄송하면서도 굉장히 유감스럽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산업은행은 자체적으로 이번 기업결합에 대해 세일즈에 나서는 한편, 대한항공에도 적극적인 대응 노력을 독려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해외 심사 기관의 합병 승인이 연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은 지난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연차총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카타르 도하에서 글로벌 항공 전문지 ‘플라이트 글로벌’과의 인터뷰에서 “대한항공이 미국과 EU 경쟁당국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승인을 받는 게 올해 말을 넘기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