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자들의 은행권을 향한 잇단 비판에 시중 은행들이 금리를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최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윤석열 대통령이 은행들이 '이자장사'를 한다고 비판한데 따른 조처다. 이번 일을 두고 은행권에서는 민간 은행을 향한 구두개입이 적절했는지 논란도 일고 있다.

23일 은행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이 전세대출 우대금리를 오는 24일부터 0.1%포인트(p) 확대해 대출금리를 낮춘다. 이와 함께 실수요 대상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금리 인하 방안도 검토 중이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주담대와 전세대출 상품에 대한 우대금리 폭과 취급 대상을 확대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KB국민은행은 지난 4월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각각 최대 0.45%p, 0.55%p 낮췄다. 우리은행은 오는 8월 말까지 주담대 상품에 대한 0.2%p 우대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22일 서울 시내 은행 창구 모습. /연합뉴스

시중 은행들은 가산금리 대신 우대금리로 대출금리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로 산출한다. 고객의 거래 실적이나 자녀 수 등 특정 조건에 부합하면 적용하는 우대금리를 조정하면 금리를 낮출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자금 조달 및 운용 구조상 당장 가산금리를 내리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는 은행들이 자율적으로 정하는 금리다. 가산금리에는 은행의 업무원가, 리스크프리미엄, 목표이익률 등이 반영된다. 기준금리는 시장금리를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은행 마음대로 손댈 수 없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이달 공시한 16개 은행에서 5월 취급된 분할상환방식 주택담보대출(만기 10년 이상)의 평균 대출금리는 4.08%이고, 가산금리는 평균 2.63%다. 1년 전과 비교하면, 16개 은행의 가산금리는 0.13%p 올랐고 대출금리는 1.28%p 올랐다. 지난 해 5월 16개 은행에서 취급된 주담대 평균 대출금리는 2.8%이고, 가산금리는 평균 2.5%였다.

은행별로 보면, 지난달 취급된 주담대 평균 가산금리가 3%대인 은행은 ▲DGB대구은행(3.65%), ▲하나은행(3.26%), ▲BNK부산은행(3.26%), ▲전북은행(3.21%), ▲BNK경남은행(3.02%) 등 5곳이다.

가산금리 2%대는 ▲우리은행(2.88%), ▲KB국민은행(2.85%), ▲광주은행(2.75%),▲NH농협은행(2.72%), ▲신한은행(2.68%) ▲제주은행(2.67%), ▲SH수협은행(2.57%), ▲SC제일은행(2.2%), ▲IBK기업은행(2.03%) 등 9곳이다. 가산금리 0~1%대는 ▲케이뱅크(1.47%), ▲카카오뱅크(0.94%) 등 2곳이다.

그래픽=손민균
그래픽=손민균

은행권 관계자들은 당국자들의 이자 장사 비판 발언에 난감하다는 기색이다. 세계적인 금리 인상 추세에 따라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 게 불가피하고, 대출금리를 낮추다 보면 운용 수익은 줄고 손해를 보는 식이 된다는 게 은행권의 항변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지금 은행의 대출금리가 오르는 데는 이자수익을 과도하게 추구하는 경영 방침보다 자본 조달 평균 금리가 오르는 영향이 더 크다"면서 "국채와 은행채 금리가 세계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대출금리 상승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가산금리는 2%대를 유지하며 비교적 일정한 수준으로 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작년 12월 취급된 16개 은행의 주담대(만기 10년 이상)의 평균 대출금리가 3.78%이고, 평균 가산금리가 2.7%인 점과 비교하면, 가산금리는 작년 말보다 소폭(0.07%) 내렸다.

일각에서는 가계대출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당국의 압박과 업계의 영업 경쟁의 영향으로 주담대와 전세대출 등 가계대출 금리 하향 조정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앞서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21일부터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최대 연 0.41%p 낮췄다. 이에 따라 케이뱅크의 아파트담보대출 고정금리형 금리는 기존보다 0.35~0.36%p 내린 연 4.53~5.03% 수준이다.

다만 은행이 재량으로 우대금리를 확대 적용해 주요 대출 상품의 금리를 하향 조정하더라도 기준금리 인상이란 큰 바람 앞에서 금리 인하 효과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왔다.

최근 미국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하면서 사실상 우리나라와 금리가 1.75%로 각각 같아졌고, 이에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내달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p를 올리는 빅스텝에 나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미국의 기준 금리 추가 인상이 예고된 데다, 물가 상승세를 감안하면 한국은행의 연쇄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면서 "기준금리 인상은 은행의 수신금리를 높이고 결국 대출금리도 따라 올라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의 본업이 이자장사인데, 이래도 욕을 먹고 저래도 욕을 먹으니 억울한 면도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을 향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은행들의 이익과 주가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하반기 은행들의 대출 금리 인하가 이어지면, 순이자마진(NIM) 상승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