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귀동 금융팀장.

2560억원의 피해가 발생한 디스커버리펀드 사건은 IBK기업은행의 문제를 응축해 보여준다. 디스커버리펀드는 진보 진영의 거물인 장하성 주중대사(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동생인 장하원씨가 설립한 디스커버리운용이 만든 사모펀드로 2017~2019년 6650억원어치가 팔렸다. 판매 당시 설명과 달리 리스크가 높은 상품에 무분별하게 투자해, 대규모 손실이 나고 펀드는 영업이 중단됐다. 전체 판매액 가운데 기업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77.7%(5170억원)에 달한다.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기업은행이 디스커버리펀드를 판매하는 과정에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수백명이 함께 돈을 집어넣은 펀드를 ‘서류상’ 50명 미만이 투자하는 사모펀드로 꾸몄다는 결론을 내렸다. 올해 초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를 내린 데 더해 15억원의 과징금을 추가로 부과했다. 이달 8일 장하원 사장은 구속돼 수사를 받고 있는데, 기업은행이 부실투성이인 디스커버리펀드를 많이 판매하게 됐는지 경과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행은 애초에 은행 대출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특수은행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해주는 채권인 중소기업금융채권(중금채)을 발행한다. 중금채는 원금 손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저율분리과세 상품이기 때문에 개인 투자자들에게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힌다.

기업은행은 중금채를 사업보고서에서 예금과 같은 수신으로 간주한다. 2021년 전체 수신액 296조5000억원 가운데 44.8%인 132조7000억원이 중금채다. 그리고 전체 대출(신탁 제외) 245조2000억원 가운데 82.5%(202조4000억원)가 중소기업 대상이다.

지난해 대출 가운데 83.3%가 기업 대상 대출인 건 당연지사다. 가계대출은 16.3%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주택담보대출 비중은 7.7%에 불과하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 대책위원회는 17일 디스커버리펀드 사건과 관련해 장하원 디스커버리펀드 대표, 김도진 전 기업은행장 등을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기업은행 디스커버리펀드 사기피해 대책위원회

그런데 기업은행과 그 계열사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대개 중소기업 대상 사업이 아니다. 기업은행의 본령에 벗어나 있는 분야에서 덩치 키우기에 골몰하다가 역풍을 맞고 있는 형국이다.

디스커버리펀드가 판매된 곳은 ‘WM센터’라 불리는 18곳의 개인 자산가 상대의 PB 특화 점포다. 여기에는 펀드 판매사인 계열사 IBK투자증권 지점이 함께 자리잡고 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니, 기업체 사장과 임원들에게 투자상품을 팔자는 발상에서 영위되는 사업이다. 수익성이 낮고, 불완전 판매 등 사고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오랫동안 중소기업을 운영해온 A씨는 “회사 운영자금을 안전하다는 말에 속아 디스커버리 펀드에 맡겼는데 깡그리 날렸다”며 “알고 보니 판매한 PB도 전화로 상품 교육을 받았더라”고 말했다.

IBK투자증권은 기업금융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중소형 증권사 가운데 하나다. 투자정보회사들의 집계에 따르면 IBK투자증권은 지난해 36조원 규모였던 주식발행시장(ECM)에서 점유율이 0.18%(700억원)에 불과했다. 기업은행 그룹 전체에서 순이익 기여도는 9.1%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증권사가 약하고 은행이 센 KB금융지주(12.8%)에도 뒤처지는 결과다.

지난 14일 IBK투자증권은 미국 주식 매매 서비스를 갑자기 중단했다. 매매를 위탁하는 현지 증권사 LEK가 부실 문제로 영업 중단 통보를 미국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위탁 매매사의 부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또 IBK연금저축, IBK저축은행, IBK자산운용 등 계열사 중에 업계에서 경쟁력을 인정받는 곳을 찾기 어려운 것이 기업은행의 실정이다.

이재명 의원이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있는 대장동 개발 사업에도 기업은행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하나은행(225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700억원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주었다. 이에 대해 한 시중은행 부장급 직원 B씨는 “기업은행은 사업성과 별도로 사회적인 가치 등을 주요 평가 항목에 집어넣기 때문에 수익성을 깐깐하게 따지지 않고 투자에 나서는 성향이 강하다”며 “당시 대장동 사업에 대해 발을 뺀 은행들이 여러 곳 있었는데, 기업은행은 실적이 중요해선지 참여하더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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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한 부분은 기업은행이 상장사라는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63.7%의 압도적인 지분을 갖고 있다. 기재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기업은행의 자본 여력을 확충해야 한다는 이유로 2019년 3월부터 7차례 유상증자를 해 지분율을 51.8%에서 11.9%포인트(p) 높였다. 지난해 기업은행의 배당성향은 30.7%에 달한다. 다른 금융지주는 대손충당금을 쌓으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에 사상 최대 이익에도 배당을 억제했지만, 기업은행은 예외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기업은행 주가는 좀처럼 오르지 않는다. 압도적인 기재부 지분율에 소수 주주의 권익이 지켜질 리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게 기업은행의 정치권 낙하산들이다. 정재호 전 국회의원이 기업은행 감사를 맡고 있는 것을 비롯해 문명순 현 더불어민주당 경기도 고양갑 지역위원장은 IBK연금저축 상근감사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IBK캐피탈은 이낙연 전 총리 의전비서관을 지낸 정영주씨가 부사장, 정구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상근감사다. 2020년 총선 당시 민주당 서울 광진구을 공천 과정에서 고민정 의원에게 공천을 양보한 김상진 전 청와대 행정관은 IBK서비스 부사장이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국정조정실장으로 선임하려다, 문재인 정부 당시 경제수석비서관 이력을 문제 삼은 여당의 반대에 주저앉았다. 윤 행장은 이후 거취에 대한 발언은 일체 내놓지 않고 계속 기업은행을 이끌고 있다. 디스커버리펀드 피해자들은 윤 행장이 민주당 인사들에 대한 눈치보기에 사건 해결을 제대로 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그의 해임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일부 노조원들의 민주당 당비를 노조 자금으로 대납했다는 혐의를 받고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조선비즈

기업은행의 기이한 모습은 정부와 시장 사이에서 애매한 형태를 취하는 존재 방식에 기인한다. 정부가 소유·운영하는 공공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감독이 이뤄질 수 없다. 또 중금채에 의존하는 특수 은행으로 다른 은행과의 경쟁 압력도 세게 받지 않는다. 기재부가 압도적인 지분을 쥔 상장사라는 지배구조도 대리인의 행동이 제대로 감지 받지 못하는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와 비용 통제나 수익성 관리가 느슨해서 생기는 연성 예산 제약(soft budget constraint) 문제를 키운다.

중소기업에 대한 자금 공급은 시장 기구를 통해서도 달성 가능해 보인다. 금융감독원 부원장을 지낸 원승연 명지대 교수(경영학)와 이기영 경기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6월 발표한 <정책금융 현황과 정책금융 공급체계 개편 과제> 논문에서 “2010년 이후 중소기업 정책금융은 과잉 공급되었다고 결론을 내려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고 분석했다. 두 사람은 “중소기업 정책금융의 과잉공급은 시장에 의한 자원배분을 왜곡시키고 좀비기업 양산으로 인한 중소기업 전체의 생산성 및 경쟁력을 저하”시킨다고 덧붙였다. 기업은행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업은행 행태를 교정하기 위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먼저 기업은행에서 시중은행과 겹치는 부분을 정리하고, 순수한 중소기업 대상 정책금융기관이 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직접 대출을 하지 않는 방안도 고려해볼만 하다. 선진국 금융기관 중 기업은행과 유사한 기능을 맡고 있는 독일재건은행(KfW)의 경우 민간은행 대출에 별도로 신용보강을 해주는 방식으로 자금을 공급한다.

두 번째는 완전한 민영화다. 중금채를 재원으로 한 중소기업 대출은 금융당국의 관리·감독을 맡게 하는 조건으로 시중은행처럼 주주들의 통제를 받게 하자는 것이다. 완전한 민영화가 힘들다면 기재부가 보유한 지분을 대거 매각하고, 소수 주주가 사외이사나 감사를 뽑을 수 있도록 하는 대안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분명한 것은 정부 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시장을 통한 규율도 이뤄지지 않는 현재 상태에서 기업은행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이 정도로 지배구조가 ‘되다 만듯한’ 공기업은 없다. 정부는 16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정책금융이 민간의 역동적 혁신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도록 민간과의 중복을 최소화하는 등 역할을 재편하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가 기업은행을 보다 효과적이고 경쟁력 있는 금융기관으로 바꾸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