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실시했던 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관리가 사실상 중단된 상황에서 은행권이 대출 영업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이에 금리 상승기 속 은행들이 1900조원에 달하는 가계 빚으로 인한 리스크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시중은행들이 최근 대출 영업을 재개하면서 가계대출이 2개월 연속 증가했다. 한국은행의 '2022년 5월 중 금융시장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은행 가계대출 잔액은 1060조6000억원으로, 전월보다 4000억원 늘었다. 은행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주담대)과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로 구성된다.

서울 한 은행에 내걸린 대출 현수막. /연합뉴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잔액 중 주담대 잔액은 전월보다 8000억원 증가한 787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주택 구입 관련 자금 수요가 둔화했지만, 전세대출 자금 수요가 지속했다. 신용대출을 포함한 가계 기타대출은 감소 폭이 전월(9000억원)보다 축소됐다. 정부의 대출규제와 대출금리 상승에도, 은행권의 신용대출 영업강화 노력이 이어지면서다.

작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대출 규제 등으로 인해 은행 가계대출은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 감소했다. 그러나 올해 새 정부가 들어서고, 금융당국 수장이 바뀌면서 규제가 효력을 잃고 있다. 정부와 당국 등에 따르면 다음 달부터 신용대출을 연소득의 1.5~2배까지 받을 수 있게 되고, 오는 3분기부터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 대한 주담대비율(LTV)이 최대 80%까지 늘어난다.

은행들은 이에 맞춰 다시 가계대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대출 금리를 내리고, 마이너스통장 등 신용대출 한도를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서다. 이들 은행은 지난해 금융당국 유도 하에 내놨던 가계대출 '중도상환수수료 감면·면제' 혜택을 잇달아 종료하기도 했다. 일종의 해약금인 중도상환수수료는 은행이 대출 실행 시 발생하는 경제적 비용을 보전하는 수단이자 수익처 중 하나다.

금융권 안팎에선 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들의 이러한 행보가 가계부채를 키워 국내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가계부채 잔액은 1862조원으로, 1900조에 육박한 상황이다.

국가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세계 36개 주요국 중에 가계부채가 가장 많다. 국제금융협회(IIF)의 '글로벌 부채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올 1분기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104.3%로 가장 높았다. 이어 홍콩(95.3%), 타이(89.7%), 영국(83.9%) 등이 뒤를 이었다.

일러스트=손민균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금리 상승기 속 예대금리차(예금금리와 대출금리 차이) 확대로 '이자장사'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여기에 중도상환수수료 등 수수료 수입까지 더해지면서 은행들은 호실적을 기록했다.

실제로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은행의 핵심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도 높아졌다. 올 1분기 4대 은행 NIM은 평균 5bp(1bp=0.01%p)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2분기에도 NIM이 3~7bp, 연간 NIM은 전년보다 12~17bp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와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의 대략적인 관리 방향을 제시했긴 하지만, 금융위원장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은행들이 슬금슬금 대출량을 늘리고 있다"면서 "높은 금리와 수수료는 결국 금융소비자 부담으로 직결되는 만큼 은행권 예대마진과 수수료 체계 등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