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구선수 차유람 선수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회의에 앞서 입당원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2일 웰컴저축은행 프로당구 선수단의 간판이었던 차유람 선수가 별안간 정계 진출을 선언했다. 시즌 개막을 고작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신생팀 하나카드 창단으로 달아올랐던 프로당구 분위기는 순간 차갑게 식었다. 웰컴저축은행은 “차유람 선수가 국민의힘에 입당한다는 사실을 전날에야 통보했다”며 당혹감을 나타냈다.

웰컴저축은행은 저축은행업계에서 5위권을 왔다갔다 한다. 몸집에 비해 웰컴저축은행은 국내 당구 부흥을 위해 상당한 자본과 노력을 쏟았다. 세계 최초 프로당구리그에 해당하는 프로당구협회(PBA) 투어 타이틀 스폰서를 2020년 첫 시즌부터 지금까지 맡았다. 타이틀 스폰서 뿐 아니라 ‘웰뱅 피닉스’ 구단까지 창단해 2020~2021 시즌에는 정규리그 우승까지 차지했다. ‘3쿠션의 제왕’ 프레데릭 쿠드롱(벨기에) 선수와 대중 사이에서 인지도가 높았던 차유람 선수를 영입할만큼 공을 들인 덕분이다.

차유람 선수는 웰뱅피닉스팀 소속으로, 다른 선수들 6명과 한 팀을 이뤄 이번 시즌을 대비할 참이었다. 그러나 차유람 선수가 입당 하루 전날에서야 팀에 ‘정계에 입문하겠다’는 결심을 통보하면서 웰뱅피닉스는 부랴부랴 차유람을 방출 선수로 빼놓고 대체자로 다른 선수를 지명했다.

PBA 역시 협회 차원에서 선수의 정치적 행보나 정치적 독립성에 대한 규정을 가칭 ‘차유람법’이라는 이름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힐 정도로 분노했다. 김영진 PBA 사무총장은 “당구는 개인 종목 베이스여서 다른 프로 종목처럼 정치 관련 규정을 별도로 두지 않았지만, 이번 사태로 정치와 관련한 리그 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많이 나왔다”고 꼬집었다.

웰컴저축은행 입장에서는 이번 차유람 선수 이탈로 성적 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이 생겼다. 동시에 차유람 선수가 등장했던 이전 광고나 프로모션용 당구 프로그램 가치가 퇴색되는 등 금전적인 손실 역시 상당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래픽=이은현

브랜드 포지셔닝 전문가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스포츠가 활성화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인지도가 부족하거나, 사회적으로 지탄받은 기업이 스포츠단 운영을 통해 평판이나 인기도를 관리하는 ‘스포츠워싱(sportswashing)’이 아주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팀이나 선수를 응원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에 스포츠 마케팅을 적절하게 구사하면 이미지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숙련된 전문가들의 관리가 없으면 오히려 역(逆)효과를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제2금융권이 비싼 돈을 써가며 스포츠단을 운영했지만, 도리어 ‘혹 떼려다 혹 붙인’ 사례는 이전에도 많았다. 특히 지난해 스포츠계를 넘어 사회 전반을 휩쓸었던 학교폭력 사태는 배구단을 운영하던 저축은행과 캐피탈에 끔찍한 기억을 남겼다.

사회적으로 가장 큰 물의를 빚었던 여자배구 이재영·이나영 선수는 소속팀이 흥국생명인 관계로 2금융권을 비켜갔다. 그러나 남자프로배구팀을 운영하는 OK금융그룹은 주축선수 송명근과 심경섭이 학교폭력에 연루돼 은퇴했다. OK금융그룹은 이후 구단 명의로 피해자에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이 사과문에 학교폭력을 ‘부적절한 충돌’로 묘사하거나, ‘직접 만나 재차 사과하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아 문자메세지로 사죄했다’는 구절을 삽입해 논란을 키웠다.

OK금융그룹과 같은 남자프로배구 리그 소속 현대캐피탈은 삼성화재 소속이었다가 학교 폭력을 이유로 은퇴했던 박상하 선수를 은퇴 번복까지 시키며 데리고 와 윤리적인 지탄을 받았다. 현대캐피탈은 1983년 창단해 챔피언 결정전에서 4회나 우승한 명문구단 대접을 받았지만, 박상하 선수 영입 이후 프로배구 팬들 사이에서는 ‘성적을 위해서는 남의 눈치나 기준을 무시하는 구단’, ‘사회적 책임감이 결여된 구단’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이렇게 욕을 먹으면서까지 성적을 위해 선수를 데려왔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현대캐피탈은 작년 시즌 창단 30년 만에 처음으로 꼴찌를 기록하며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남자프로배구 서울 우리카드 우리WON을 운영하는 우리카드 역시 선수 폭행으로 6개월 자격 정지를 받은 신영철 감독과 3년을 재계약하면서 윤리 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계자는 “프로야구나 프로축구처럼 팬층이 두터운 스포츠는 단장과 사장을 포함한 운영진에 해당 스포츠 출신 인력이 포진해있고, 감독이나 코치진도 양과 질면에서 두터운 편”이라며 “제2금융권이 후원하거나 운영하는 비인기 스포츠 종목 구단들은 상대적으로 경영진까지 진입한 해당 종목 출신 인력이 드물기 때문에 동기 부여나 선수 관리 측면에서 약점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