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 완화 추진에 은행권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리 정책과 함께 주택 시장 관련 규제는 은행의 이자수익, 성장성과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생애 첫 내 집 마련에 나서는 대출 손님 잡기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현행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대출 규제를 전면적으로 풀기보다는 생애 첫 주택 구매자를 대상으로 한정해 LTV 규제를 풀어주는 '핀셋 규제 완화'를 방향키로 잡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생애 최초 주택구매에 대한 LTV 상한을 80%로 높여 잡는 방안을 11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DSR 안착 상황 등을 고려해 생애 최초 주택 구입 가구의 LTV 최대 상한의 완화(60∼70%→80%)를 우선해 추진하겠다"고 했다.
LTV 규제 전반을 풀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집값 상승과 주택 시장 불안, 가계부채 확대 등 부작용을 고려해 대상을 한정한 것인데, 은행업계에서는 잠재 대출 수요가 한정되면서, 은행들의 파이 경쟁이 더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DSR 규제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대상을 한정해 LTV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라 시장 전반의 대출 수요가 살아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면서 "은행 입장에서는 영업 환경이 다소 팍팍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기에 진입하면서 가계대출 시장 수요 유입이 약해졌고, DSR 규제 등의 영향으로 LTV 규제 완화를 이용해 내 집 마련에 나서는 수요는 한정적일 것이란 시각이다.
LTV 규제를 풀더라도 소득을 기반으로 한 DSR 규제가 작동하는 한 소득이 낮으면 대출을 받기 어렵다. DSR 규제는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간소득으로 나눠 가계 대출을 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 도입된 DSR 규제는 현재 3단계에 걸쳐 시장에 적용 중인데, 지난 1월부터는 2단계가 시행돼 집값과 상관없이 신용대출·카드론 등 총대출액이 2억원이 넘으면 40% 규제(은행권 기준)가 적용되고 있다. 오는 7월부터는 차주별 총대출액이 1억원을 초과할 경우 DSR 40%를 넘으면 안 되는 3단계가 시행된다. LTV 규제는 법 개정 없이 금융위원회 행정지도 등으로 완화할 수 있어 상반기 안에 새 규제가 시행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이에 이미 은행들은 새 정부의 금융·부동산 정책 기조를 고려해 선제적으로 대출영업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은행들이 앞다퉈 주담대 상품 대상을 확대하고, 초장기 대출 상품을 속속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달부터 신한은행과 농협은행이 40년 만기 주담대 상품 판매를 시작했다. 기존에 시중은행의 주담대 상품의 최장 만기는 35년이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40년 만기 주담대 출시를 검토 중이다. 하나·부산·대구은행은 이미 40년 초장기 대출 상품을 판매 중이다. 만기가 늘면서 차주 입장에서는 매달 내는 원리금 부담을 줄일 수 있고, DSR 규제에 따른 대출 한도를 늘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은행 입장에서는 차주가 이자를 내는 기간이 길어지고, 이자도 더 거둘 수도 있다.
시장에서는 금융업계 후발주자인 인터넷전문은행들의 성장성 열쇠가 '주담대' 시장에 달렸다는 분석도 있다. 이에 인터넷은행들은 여신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초 내놓은 비대면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며 주택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안정적인 상품 출시와 운영을 위해 초기에는 KB시세 9억원 이하 수도권 아파트로 대출 신청 대상을 한정했다가 이후 대상 주택 가격을 확대했는데, 상반기 중 주택담보대출 가능 지역을 확장할 계획이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올해 2분기 이후 주담대 상품의 여러 조건을 완화하면서, 주담대 실적 성장이 주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넷전문은행 중에서 아직 주담대를 취급하지 않고 있는 토스뱅크도 주택 시장 진입을 고려 중이다. 토스뱅크 관계자는 "구체적인 일정이 정해지지는 않았으나, 주담대 상품 출시를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케이뱅크는 2020년 비대면 아파트담보대출을 먼저 내놓은 데 이어 지난해 9월 전세대출과 청년전세대출 상품을 동시에 출시했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를 앞세워 2020년 8월 출시한 아파트담보대출은 출시 1년 4개월 만인 지난 1월 누적 취급액 1조원을 넘겼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의 대출 증가율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부동산 시장 분위기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시장이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느냐에 달렸다"면서 "금리 인상과 DSR 규제 등의 영향으로 대출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편,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올해 들어 4개월 연속 감소세다. 지난달 가계대출 잔액은 702조3917억원으로 전월보다 8020억원 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