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 횡령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금융감독원이 은행권에 자율적인 감사를 요청하는 '자체감사 요구제도'가 조기 시행될지는 않을 전망이다. '자체감사 요구제도'의 구체적 내용을 완성하지 못해 당장 적용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자체감사 요구제도는 금감원이 금융사에 자체감사를 요구하면 이에 대해 감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금감원에 보고하는 제도다. 금감원은 금융회사 조치를 원칙적으로 수용하되, 자체감사 활동이 부실하거나 허위 보고한 경우는 직접 검사를 실시한다.
금감원은 일단 우리은행 횡령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이후 필요한 경우라면 다른 은행에 대한 검사에 착수하겠다는 방침이다.
29일 금감원에 따르면 자체감사 요구제도는 지난달부터 시범 시행을 시작했지만, 제도 보완 과정을 거치며 올해 하반기가 돼서야 시행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체감사 요구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만드는 단계"라며 "어떤 식으로 진행하고 운영할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시행 시기는) 올해 하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권역별 상황에 따라 자체감사를 요청할 사안이 있을 때 하는 것이라 정확히 시점을 이야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금융권에서는 올해부터 자체감사 요구제도를 도입하고 시범시행에 돌입한 만큼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따라 전 금융권에 이 제도를 통한 자체감사가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자체감사를 요구하는 주제가 위규사항 적발보다는 내부통제 점검 ‧개선사항 위주로 선정된다고 예고돼 온 만큼 내부통제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대한 후속 조치로 자체감사 요구제가 발동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자체감사 요구제도 자체가 완성되지 못하면서 우리은행 횡령에 따른 은행권 점검은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행해야 하는 몫이 됐다. 한 은행 관계자는 "(우리은행의 자체 검사처럼) 은행이 감사를 통해 확인을 못 했거나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 만큼 (감사의) 지침 가이드라인을 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이미 은행권은 우리은행 횡령 사건 발생 이후 은행과 타사 보유 자산 등 모든 자산에 관련한 계좌 보유 적정성, 지급처리 적정성에 대해 점검하고 있다. 추가로 감사부서에서 내부통제 시스템 적정성에 대한 확인도 진행할 예정이다.
금감원은 향후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은행권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문제점이 발견될 시 전 은행권으로 검사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이 자체감사 요구제를 통해 은행권에 자체적인 검사를 요구했어도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이미 종합감사, 정기감사 등을 하는데 별도로 하면 보고를 위한 감사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금감원이 적발해야 함에도 (감사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율배반적"이라며 "자율로 맡겨놔야 하는 부분은 자율로 맡겨놓아야 하고 감사를 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금감원이 위임받은 권한인 감사권을 통해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율감사라는 큰 방향에 따라 보여주기식으로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자체감사 요구제도가 이번에 시행되지 않더라도 금융사가 자발적으로 감사 의무를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제기된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감사를 해보라는 요청이 없어도 이사회는 감시 의무가 있다"며 "지난해 11월 대법원 판례도 나왔듯이 이사회는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고 실효적인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우리은행 횡령 사건은) 내부통제 기준의 실패, 이사회 감시 의무의 실패라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