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첩첩산중에 빠졌다. 이 회장이 반대한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이 점차 현실화되고, 쌍용차 매각까지 무산되면서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상황이다. 이 회장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거취가 불투명해졌다.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부산 이전과 관련한 어떤 의견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산업은행은 인수위가 출범하면 부산 이전 반대 입장을 즉각 전달한다는 계획이었다.
산은 관계자는 "인수위에서 아직 (부산이전과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요청한 적이 없다"면서 "의견을 내는 것도 인수위가 불러줘야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거기까지 진도가 못 나갔다"라고 말했다.
전날 각 정부부처의 인수위 업무보고가 끝난 점을 감안하면 산업은행의 의견 제시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은행의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도 관련 의견 전달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표 지방균형발전 공약으로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부산 이전을 약속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금융산업을 분산해 부산을 금융중심지로 육성하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가 윤 당선인의 산업은행 부산 이전 공약을 위한 태스크포스(TF) 설치를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 분위기와는 다르게 산은 내부에서는 부산 이전 TF 구성 등에 관한 내부 논의조차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회장이 부산 이전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월 기자간담회에서 "지방 이전은 진보가 아닌 퇴보"라면서 윤 당선인의 공약을 비판했다.
이 회장은 "근본적인 인프라와 기술을 갖춰나가고 금융이 도와줘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몰이해 탓에 지역 정치인들이 잘못된 주장을 한다"며 "말이 마차 앞에 있어야 하는데 마차를 말 앞에 두고 끌어보라고 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산은은 대선이 끝난 뒤에도 기존 의견과 변함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윤 당선인은 "부산으로 산은 본점 이전을 내가 약속했다"면서 "일시적 공약이 아니고, 지방발전을 위해 대형은행 이전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고승범 금융위원장도 '부산 금융중심지 포럼' 출범식에 참석해 "금융중심지 부산 육성"을 강조하면서 윤 당선인에 힘을 실어줬다.
이 회장 입장에서 난감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다. 산은이 최근 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쌍용자동차 매각에 실패하자 대내외적으로 이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이다. 산은은 쌍용차의 주채권은행으로, 매각정책을 세밀하게 설계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에디슨모터스(에디슨)·쌍용차 합병'에 앞서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도 무산된 적이 있던 터라 이 회장은 연이어 주요 매각 건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이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매각 추진 당시 회장직을 내놓을 생각으로 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금융권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산은 수장이 교체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 회장이 차기 정부 공약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고, 일부 민주당 정치인들도 이를 지원 사격하고 있다"며 "산은 뿐 아니라 다른 국책은행도 새 정부 철학과 맞는 인물로 교체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실제 이 회장은 지난 2020년 이해찬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저서 출간 축하연에서 "가자, 20년"이라는 건배사를 제안해 민주당의 장기 집권을 기원하며 정치중립성 논란을 일으켰다.
이 회장의 전임자인 이동걸(동명이인) 전 산업은행 회장도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자 임기를 1년 5개월 남겨두고 물러난 바 있다.
산은 관계자는 쌍용차 매각에 대한 이 회장의 책임론과 관련해 "쌍용차 같은 경우는 저희가 지금까지 했던 구조조정과 다르게 채권자로만 존재하는 입장이라 매각 정책에 어떤 입장을 내고 설계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다"라면서 "회생법원이 (쌍용차 매각을) 주관하고 쌍용차가 주도하는 사안"이라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