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일제히 KB금융(105560) 노조 추천 이사 선임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스루이스(Glass Lewis)부터 국내 의결권 자문사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SG)까지 반대 의사를 나타내면서, KB금융 노조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은 올해도 난항이 예상된다.
반면 노조 추천 사외이사를 추진 중인 '국책은행' 기업은행의 경우에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도입 등에 힘입어 파란불이 켜진 분위기다. 기업은행의 첫 노조 추천 이사이자, 수출입은행에 이은 금융권 두 번째 노조 추천 이사 탄생이 임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조선비즈가 입수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KB금융 의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KB금융 노조가 추천한 김영수 전 수출입은행 부행장의 사외이사 신규선임 건에 대해 구조원이 '반대' 의견을 권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ISS와 글래스루이스에서도 해당 안건에 대해 동일하게 반대가 권고됐다.
◇ "근로자 대표성과 독립성 훼손 우려된다"
구조원은 '독립성 훼손 우려'를 첫 사유로 꼽았다. 김 전 부행장이 2018년 5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국토교통부 산하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에서 투자사업본부장(상임이사)으로 재임한 이력을 문제로 삼았다. 종속 회사와 중요한 거래 관계가 있었던 법인의 3년 내 특수관계인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 KB금융은 KIND와 협력해 2200억원 규모의 글로벌인프라펀드(GIF)에 투자했고, 해당 펀드는 KB자산운용이 운용했다. KB국민은행은 KIND와 해외인프라사업 발굴·공동 금융지원을 위해 업무협약을 맺었고, KB증권은 KIND의 1500억원 규모 공모채 발행의 대표주관을 맡기도 했다.
보고서는 "김 후보는 KB금융과 거래 관계를 맺고 있는 법인에서 최근까지 재임한 임원으로, 사외이사로서 KB금융의 경영진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 감시할 만한 독립성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노조가 추천한 후보란 점에 대해서도 구조원은 유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후보의 추천 주체는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로, 근로자 대표성을 갖는다"면서 "근로자에 대한 보상은 고정적인 반면, 주주는 위험투자를 통해 수익과 성장을 추구하므로 근본적인 이해상충이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이어 "KB금융 노조가 윤종규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등 노사 간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했다. 보고서는 "근로자 주주의 이사 후보 추천은 회사가 치명적인 지배구조 문제를 안고 있는 등 제한적인 경우에 한해서 주주가치 제고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도 "그런데 KB금융은 우수한 지배구조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했다.
ISS와 글래스루이스의 경우, 노조가 김 전 부회장을 추천한 사유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반대를 권고했다.
앞서 KB금융 노조는 "KB금융의 6개 계열사가 14개국에서 해외 사업을 하고 있으나, 글로벌 부문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해외 사업을 확대해 실질적이고 전문적으로 운영하려면 해외 사업 전문가를 사외이사로 영입해야 한다는 사유를 들어 한국수출입은행과 KIND를 거친 김 전 부행장을 추천했다.
이에 대해 ISS는 "김 전 부행장의 해외 경험은 높이 평가하나, 인프라·도시개발 등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이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금융그룹의 해외 사업을 개선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의견을 냈다.
글래스루이스 역시 "기존 이사진의 경영 부실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이나 개선책을 제공하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이들 자문사 3곳은 사측(KB금융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이 추천한 최재흥 강릉원주대 멀티미디어공학과 교수에 대해선 찬성을 권고했다.
◇ 5수째 '고배 위기' KB… 국책 기업은행은 '순항'
KB금융 노조의 사외이사 추천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 과거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노조 추천 또는 우리사주조합 추천 등의 형태로 사외이사를 후보로 내세웠지만, 모두 통과하지 못했다. 올해도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일제히 부정적 의견을 표명하면서 난항이 예상된다.
KB금융의 전체 지분 가운데 70%가량은 외국인 투자자인데, 여기에는 ISS나 글래스루이스의 자문 의견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또 다른 열쇠는 지분 9.77%를 보유한 최대주주 국민연금공단이다. 국내 다수 기관투자자의 의결권을 자문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입김이 미칠 수 있다.
국내 금융권에서의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사례는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유일하다. 지난해 9월 수은 노조가 추천한 이재민 해양금융연구소 대표가 사외이사로 선임된 바 있다.
두 번째 사례는 또 다른 국책은행인 기업은행(024110)이 될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행 사외이사 2명의 임기가 이달 말 만료돼 공석이 됨에 따라, 기업은행 노조는 3명의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했다. 현재 후보자들의 프로필을 보고하는 등 금융위원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기업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는 노조 추천 이사가 불발됐던 지난해 4월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전언이다. 더구나 노조추천이사제 추진은 내년 1월 임기가 만료되는 윤종원 기업은행장의 취임 당시 약속이기도 하다.
지난 1월 국회가 공공기관에 노조 추천 비상임이사 임명을 의무화하는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하반기부터 시행이 의무화된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 역시 노동이사제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바 있다.
금융권에서는 수출입은행·기업은행·산업은행 같은 국책은행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신용보증기금·서민금융진흥원·예금보험공사·캠코 등 금융 공기업이 대상이다. 다만 KB금융 같은 민간 금융사에선 아직 도입 가능성이 요원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