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대유행으로 주춤했던 은행권의 해외 진출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가운데, 업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충격파에 주목하고 있다.
주요 금융 그룹은 코로나 종식을 기회로 삼아 해외 사업을 강화해 은행의 실적 성장세를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다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새 변수로 지목되면서 우려감도 커지고 있다. 은행 관계자들은 "동남아시아 시장 위주로 해외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러시아 사태에 따른 직접적인 영향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글로벌 금융 시장의 충격이 커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분위기다.
14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올해 은행들이 잇따라 해외 지점 및 사무소의 문을 열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이달 인도 금융당국으로부터 인도 노이다지점 예비인가를 획득했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홍콩지점과 런던사무소를 개설했고, 올해 연내 시드니지점, 북경지점의 개점을 준비 중이다. 현재 8개국에 11개 거점을 구축하고 있는데, 오는 2025년까지 12개국에 14개 이상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이달 신한은행 캄보디아 현지법인인 신한캄보디아은행은 캄보디아 수도권 칸달주의 중심도시인 따끄마우에 영업점을 개소했다. 신한은행은 현재 20개국에 163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지점 14곳, 현지법인 11곳(법인지점 145개, 단독법인 3개), 대표 사무소 1곳 등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월 싱가포르 지점 본인가를 획득하고 개소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일정을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캄보디아 현지 자회사 프라삭마이크로파이낸스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캄보디아 프라삭(Prasac)은 산하 182개 지점 운영 중인 현지 소액대출금융 업계 1위 금융사로, KB금융은 동남아 사업 확장의 전략 거점으로 삼고 있다. 앞서 인도네시아 부코핀은행에도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우리은행은 지난 1월 우리은행 캄보디아를 정식 출범했으며, 중국 심천에 심천지엔하이지행을 개설했다. 지난해 12월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사무소를 열었다. 이에 따라 이달 기준 세계 23개국에 450개 해외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24개국에 215개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2025년 글로벌 이익 비중 40%'라는 목표하에 글로벌 영업 강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에 해외 사업은 국내 시장에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주요 과제다. 이에 따라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해외 시장 특성에 따라 구분한 '투트랙 전략'을 펼치고 있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미얀마 등 신흥 시장에서 현지 고객 기반 영업을 강화하는 한편, 미국과 영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독일 등 선진 시장에서는 기업금융 영업을 강화하는 것이다. 농협은행의 경우 '선진금융시장, 기업금융시장, 리테일우선시장' 등 3개로 분류해 해외 사업 텃밭을 넓히고 있다.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면서 은행권 주요 리더들의 해외 출장도 최근 다시 시작됐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오는 4월 해외 투자 유치를 위한 싱가포르 출장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연말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 에든버러 등을 2주간 방문했고,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은 지난해 12월 폴란드, 영국, 프랑스를 방문해 유럽 영업 전략을 점검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만 해도 해외 진출이 디지털 전환보다도 더 중요한 과제였다"면서 "코로나19 종식 기대가 커진 만큼 해외 사업과 해외 투자 유치 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살아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커진 해외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외 사업의 변수로 떠올랐다. 이달부터 우리나라도 러시아 주요 은행 거래 중지, 러시아 국고채 거래 중단,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배제 등 러시아 금융제재에 동참했다.
시중은행 중에서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러시아에 진출해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다. 지난해 3분기까지는 실적도 전년보다 성장했는데 올해 사업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러시아 금융제재가 장기화하면 현지 채권 회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에 따라 대손충당금이 늘어나면서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각 은행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KEB하나은행의 지난해 3분기까지 순이익은 전년 동기(30억1600만원)보다 41.9% 늘어난 42억8100만원이다. 러시아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3분기 말까지 손이익이 전년 동기(33억8600만원)보다 45.1% 늘어 49억1400만원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보유한 러시아 관련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각각 2960억원과 2664억원 규모다. 신한은행은 357억원, 국민은행 56억원 등이다.
은행들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밖 해외 사업장에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 대유행에 이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해외 시장이 불안정한 상황이나 현재 국내 은행들이 진출해있는 해외 사업장은 지정학적으로 접점이 없어 현재까지는 충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그룹 차원에서 기존 해외사업 전략을 수정하는 분위기는 없다"면서 "글로벌 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현지에 진출한 우리나라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과 네트워크 협력을 통해 IB 딜과 현지 우량 기업 대출 등의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다만 러시아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해외 금융 시장의 충격이 커진다면 해외 사업 전략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면서 "해외 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